일본 관광객의 필수 코스가 된 종합 할인점 ‘돈키호테’에 들어서면 입구부터 펼쳐지는 ‘산만함’에 입이 떡 벌어진다. 물건은 박스째로 쌓여 있고, 가격표는 사방에 덕지덕지 붙어 있다. 이곳을 찾은 여행객들은 늘 보따리상이 돼 문을 나선다. 돈키호테는 50엔짜리 과자부터 명품 잡화까지 닥치는 대로 팔아 연매출 2조엔의 초대형 유통기업이 됐다.
돈키호테를 창업한 일본의 전설적 사업가 야스다 다카오(현 최고 고문)는 최근 발간한 <운의 경영학>에서 무일푼이던 자신이 수많은 실패를 거쳐 돈키호테로 대박을 터뜨릴 수 있었던 생존 비결을 전한다. 핵심은 행운을 최대화하고, 불운은 최소화하는 것. 인생에 찾아온 기회를 내 것으로 만드는 마음가짐과 실천법이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과 함께 책에 담겼다.
운의 사전적 정의는 ‘이미 정해져 있어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천운과 기수’다. 야스다는 다르게 본다. 운은 결코 숙명이 아니며,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스스로 운을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주어를 전환하면 운이 따라붙는다”고 강조한다. 유통업의 경우 판매자가 아니라 구매자 관점에서 매장을 운영하라는 의미다.
야스다는 29세에 놀음에서 번 종잣돈 800만엔으로 돈키호테의 전신 ‘도둑 시장’을 열었다. 도둑 시장은 ‘보기 편하고, 집기 편하고, 사기 편하게 진열한다’는 유통업계의 상식을 정면으로 거슬렀다. 의도적인 산만함을 통해 고객에게 보물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재미를 선사했다. 이에 대해 그는 “고객은 안이한 장삿속을 반드시 알아챈다”며 “고객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매장을 구성하고 상품을 확보하며 가격을 설정하는 일에 온 힘을 기울였다”고 썼다.
돈키호테가 성공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은 이른바 ‘권한의 이양’이다. 야스다는 직원마다 담당 구역을 정해주고 매입부터 진열, 가격 설정, 판매에 이르기까지 자율권을 줬다.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여 최대의 성과를 창출하도록 동기를 부여한 것이다. 이런 대담한 결정 덕에 돈키호테는 폭발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돈키호테는 최근 30여 년간 매출과 영업이익이 꾸준히 증가한 일본 내 유일한 기업이다.
운을 부르는 3대 조건도 제시한다. 먼저 리스크를 감수하는 공격적 태도다. 야스다는 “안전지대에 머무르며 큰 성공을 거두는 사람은 없다”고 역설한다. 실제로 그는 2007년 내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적자가 많은 종합 슈퍼마켓 ‘나가사키야’를 인수하는 결정을 내렸다. 현재 ‘메가 돈키호테’로 탈바꿈한 나가사키야는 주력 사업 부문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도전도 빼놓을 수 없다. 돈키호테는 싱가포르, 태국 등 아시아 6개국에서 총 45개 점포를 운영하는 등 해외로 무대를 넓히고 있다. 마지막으로 “미래를 낙관하는 자세도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조언도 덧붙인다.
불운을 막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남 탓만 하는 사람을 피해야 한다. 사실을 부풀리는 등 실제 이상으로 자신을 과시하는 사람과도 거리를 둬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야스다는 이번 책이 자신의 ‘유언 같은 책’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풍파를 헤쳐온 사업가의 삶의 지혜가 농축돼 있다. 다만 기존에 발간됐다가 절판된 그의 기존 자서전과 겹치는 내용도 많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