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2일 상호관세 부과 이후 양자 협상을 통해 세계 국가들과 새로운 무역협정을 체결할 것”이라는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의 16일(현지시간) 발언은 관세전쟁에 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다음 카드가 ‘국가별 양자 무역협정’임을 노골화한 것이란 평가다. 미국이 세계 무역흑자국을 겨냥해 양자 협상을 강요한다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아래 지난 13년간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올려온 한국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미국이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할지, 아니면 FTA를 넘어서는 새로운 양자 무역협정을 맺자고 할지 현재로선 확실치 않다. FTA 개정에는 국회 동의 등 시간이 걸리는 만큼 비관세장벽 철폐나 특정 산업에 대한 별도 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제무역 ‘새판 짜기’ 노골화한 美17일 정부 고위 관계자는 루비오 장관의 발언에 대해 “기존 자유무역이 아니라 균형무역을 목표로 새롭게 협정을 체결하자는 뜻”이라며 “핵심 수단으로 관세를 적극 활용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중상주의 기조 연장선에 있는 발언”이라고 풀이했다. 루비오 장관은 ‘공정성과 상호성’을 새로운 무역협정의 기준으로 제시했는데, 미국에 많은 무역흑자를 내는 나라엔 얼마든지 관세장벽을 높일 수 있다는 의도를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균형무역’은 트럼프 대통령이 신뢰하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강조하는 단어다. 극단적으로 양국의 수입과 수출을 ‘0’으로 맞추는 게 옳다는 주장이다. 라이트하이저는 지난달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도 “민주 정부와 자유경제를 갖춘 대부분 국가가 함께 모여 새로운 무역체제를 마련하고, 무역흑자가 큰 나라에는 관세를 높인 뒤 3년 주기로 재평가해 수지 균형을 맞추자”고 한 바 있다.
“루비오 장관의 발언은 협상의 여지를 두겠다는 뜻”이라는 해석도 있다. 상호관세 부과가 예외 없이 강행되니 ‘선물을 들고 오라’는 의사를 내비친 것이라는 설명이다.
미국이 주요국 모두와 양자 협정의 틀을 짜는 게 가능할지는 미지수라는 분석이 많다. 물리적으로 각국과의 개별 협상이 쉽지 않은 데다, 결렬 땐 미국의 관세폭탄만큼 각국으로부터 보복관세를 부과받을 수 있어서다. 미국에서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는 것이 관세전쟁을 누그러뜨릴 요소라는 분석도 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미국이 상호관세 이후에도 협상국과 서로 균형된 선에서 ‘주고받기’ 협상을 한 뒤 새로운 교역의 틀을 마련했다고 선언하는 차원에서 타협할 것”이라고 했다. ◇한·미 FTA 당장 재협상 대상 되나한국의 대미 교역액은 한·미 FTA가 체결된 2012년 1018억달러에서 지난해 1999억달러로 96.3% 증가했다. 같은 기간 대미 무역흑자는 152억달러에서 557억달러로 3.6배 수준으로 불어난 만큼 미국이 한국을 예외로 두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 FTA 재개정이나 이를 대체할 새로운 무역협정 체결을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당장 다음달 2일 상호관세를 발표하면서 미국이 제기할 문제를 보면 ‘한·미 FTA의 운명’을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작년 공개된 USTR 국가별장벽보고서(NTE)에 따르면 미국은 사과 배 등에 대한 한국 정부의 수입검역 절차를 주요 비관세장벽으로 꾸준히 문제 삼아왔다. 최근 다시 불거진 ‘30개월령 이상 소고기 수입 제한’ 외에도 구글의 정밀지도 반출 문제, 한국의 약값 책정 정책, 온라인플랫폼기업 독과점 규제 등이 미국이 가할 무역 압력과 재협상 요구의 명분이 될 수 있다. 부가가치세를 포함한 한국 조세 규정을 손보라는 도 넘은 요구를 할 가능성도 크다.
김성중 김앤장 통상전문 변호사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강조하는 키워드는 속도전”이라며 “1기 FTA 재협상 시 한국의 절차 준수에 불만이 많았던 미국이 이번에는 FTA는 그대로 두고, 특정 산업과 관세에 대해 새로운 약속을 하는 협상을 요구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김대훈/하지은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