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떨어뜨린 '관세 폭탄'…한국 기업 생존 해법은 [김갑유의 중재 이야기]

입력 2025-03-18 07:00
수정 2025-03-18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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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직후 전임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을 대대적으로 철회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여기에는 파리기후협정 탈퇴, 정부의 검열 금지와 언론 자유 복구, 정부 기관의 물가 대응 총력 지시 등이 포함됐다. 이러한 조치들이 미국의 대외 무역 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은 명백하다.

특히 파리기후협정 탈퇴는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환경 정책 방향성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고, 미국과 다른 국가 간의 무역 협상에서 환경 규제와 관련된 논의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정부의 대규모 인력 감축도 추진하고 있다. 정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로 해석되지만, 일부에서는 공공 서비스의 질 저하와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전례 없는 관세 갈등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우며 주요 무역 상대국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를 시작했다. 지난 12일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수입 철강과·알루미늄 제품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이 조치는 기존의 예외나 면제를 모두 폐지하고 철강 및 알루미늄으로 제조된 253개의 파생상품에도 적용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존의 무관세 수출 쿼터가 폐지되어 모든 철강 및 알루미늄 제품 수출 시 25%의 관세를 부담하게 됐다. 유럽연합(EU)도 미국의 관세 부과에 대응해 약 41조원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대한 보복 관세 부과 계획을 발표했다.

이런 국가 간 무역 갈등은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지금과 같은 규모로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적은 없었다. 과거에는 국가 간 무역 갈등이 발생하면 이를 국제적으로 해결하는 분쟁 해결시스템이 존재했지만, 지금은 그런 시스템이 없어진 상태다. 국가 간 무역분쟁을 해결하는 역할을 하던 세계무역기구(WTO)가 사실상 무력화된 상황에서 각국은 무역전쟁과 같은 상황에 놓여있다. 이런 상황은 국제 거래에 참여하는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공급 라인 붕괴가 법률 분쟁으로트럼프의 수입 규제 및 관세 부과 조치,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각국의 조치는 제조업이나 건설업 공급체계(Supply Chain)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것이다. 수입 규제나 갑작스러운 관세 부과로 수입 가격이 현저히 오르면 기존 계약을 예정대로 이행하는 것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미국의 한 도시에 실내 돔형 야구장을 건설하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고 하자. 야구장 지붕 구조물은 철제와 알루미늄으로 만드는데, 한국의 공장에서 제작과 도장 작업이 이뤄진다. 야구장 관람석은 중국에서 생산되어 운송된다. 전광판과 전기 장비의 핵심 부품은 유럽에서 생산하고, 미국으로 운송돼 현지에서 최종 조립한다고 가정하자.



이런 프로젝트에는 발주처, 프로젝트 총괄 기업, 기업과 계약을 맺은 여러 협력 업체가 있다. 이 업체들은 각각 계약을 맺고 제작·도장·조립 업무를 나눠 맡게 된다. 이런 업무는 짧으면 수개월, 길면 수년이 걸린다.

그런데 미국 정부가 갑자기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면 지붕 구조물의 원가가 급등하게 된다. 미국 정부가 중국 제품에 대해 수입 규제를 하거나 엄청난 관세를 부과하면 관람석도 제때 공급받기 어렵다. 수급이 늦어지면 전체 프로젝트가 지연될 수밖에 없다.

볼트·너트·리벳같이 아주 조그만 물품이라도 수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복잡한 설비나 기계 공급에도 지장을 준다. 주요 설비와 기계 조립이 지연되기 때문이다. 계획대로 제때 물품을 공급받지 못하면 프로젝트 일정은 일부 혹은 전체적으로 지연된다. 이는 결국 프로젝트 현장에서의 대기 시간과 인건비 증가로 이어진다.

이 손해를 누가 부담할 것인가의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계약서상 이 위험을 누가 부담하기로 했는지를 가리기 위해 기업 간의 분쟁이 생기게 된다.
정부 조치가 부른 시장 변화... 법률적 구제 방법은또 다른 예를 생각해보자. 발전소를 건설할 때 터빈이나 보일러 등 핵심 부품이 제때 제작· 공급되지 않으면 발전소 전체의 건설 일정이 지연된다. 이에 따른 손해와 추가 비용을 두고 발주처, 건설사 그리고 공급업체 간 다양한 분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자동차 산업도 마찬가지다. 엔진의 주요 부품이 제때 공급되지 않으면 전체 생산에 차질을 빚게 된다. 여기에 자동차 생산지에 따라 보장되던 관세 혜택이나 정부 보조금이 사라지면 기존 계약도 그대로 이행하기 어렵다. 결국 관련 기업 간 분쟁은 불가피해진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지만, 누가 그 손해를 부담할 것인가를 두고 법적 다툼을 벌여야 하는 것이다.



인력시장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한다. 국제적인 인력 이동 제한과 비자 규제는 노동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건설업이나 노동집약적 산업에서는 인건비 상승과 공기(工期) 지연이 불가피해지고, 관련 기업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보호무역 조치와 상대국의 맞대응 조치는 기업들이 규제로 무역위원회 등에 피소되거나, 부당한 규제를 벗어나기 위해 이의 절차나 소송 등 법적 조치를 취하는 요인이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부의 정책 변화 혹은 이미 약속된 조치의 불이행으로 기업이 국가에 책임을 묻는 국제투자중재(ISDS)로 확대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이 약속한 보조금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경우 보조금을 받는 것을 전제로 투자한 기업들에 손해를 발생시키고, 결국 미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중재가 제기될 수도 있다. 이런 위험은 미국뿐만 아니라 최근 자국 이익을 앞세운 정책 변화를 경쟁적으로 시도하는 다른 강대국에도 동일하게 나타날 수 있다.기업과 국가의 생존전략현재 세계 각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국제규범을 어느 정도 무시해도 된다'는 분위기로 극단적인 조치를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이런 조치는 기업 간 국제 분쟁을 야기하고 국가 간 갈등으로 번지기도 한다.

각국이 어떤 배경에서 어떤 조치를 취하든, 기업 입장에서는 변화에 적응하고 생존해야 한다. 생존을 위해서 법률적 분쟁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시기일수록 분쟁 해결 수단의 역할과 기능이 더욱 중요해진다.



효과적인 분쟁 해결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면 기업은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국제 사회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마치 팬데믹이 발생하면 각국의 방역시스템과 의료 체계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것과 같다. 지금과 같은 '무역 전쟁'에서는 국제 분쟁의 신속하고 효율적인 해결이 필수적이다.

위기는 곧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각국이 자국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과 국가는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 글로벌 시장의 변화와 각국의 조치를 면밀히 주시하며,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계약 체결 시 필요한 조항을 미리 마련하고, 법률 분쟁이 예상된다면 사전에 대응책을 준비해 실제 분쟁 발생 시 효과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이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점점 경쟁력을 잃겠지만, 반대로 잘 대응하는 기업은 오히려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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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유 법무법인 피터앤김 대표변호사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사법연수원(17기)을 마치고 1988년부터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해 2002년 국내 최초로 국제중재 소송그룹을 만들었다. 아시아인 최초로 유엔 산하 국제상사중재협회(ICCA) 사무총장을 역임하고 한국인 최초로 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법원 부원장을 맡았다. 한국과 론스타의 6조원대 투자자-국가 간 분쟁(ISD)에서 한국을 대리했다. 2019년 국제중재 전문 로펌인 피터앤김을 설립해 활약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