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종전은 곧바로 냉전으로 이어졌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 진영은 소련이 동유럽으로 진격하자 전 세계에 공산화 물결이 퍼질까 두려워했다. 특히 1949년 소련이 핵 개발에 성공하자 공포는 더욱 커졌다. 미국은 그해 전략물자의 공산권 수출을 금지하는 것을 핵심으로 수출통제법을 정비했고, 서유럽 국가와 일본 호주 등을 참여시켜 공산권 수출 제한을 국제적으로 확산하는 다자간 수출통제 조정위원회(COCOM)를 출범시켰다.
미국은 1954년엔 ‘민감 국가’라는 개념을 도입해 해당 국가와는 원자력과 과학기술 교류 자체를 끊었다. 처음엔 소련과 동구권 국가가 중심이었다. 하지만 국제 정세가 변하면서 지금의 ‘민감 국가 및 기타 지정 국가 목록’(SCL·Sensitive & Other Designated Countries List) 제도로 바뀌었다. 미국 에너지부(DOE)는 국가안보, 핵 비확산, 지역 불안정, 경제안보 위협, 테러 지원 등을 이유로 리스트를 만들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위험 국가’, 북한과 이란은 ‘테러 지원국’이라는 이름으로 SCL에 올라 있다. 가장 아래인 ‘기타 지정 국가’엔 인도, 이스라엘, 대만 등이 들어 있다.
미국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2기 출범 직전인 지난 1월 초 한국을 ‘기타 지정 국가’에 포함해 충격을 주고 있다. 한국은 미국의 오랜 동맹국이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지정 배경에 어떤 설명도 하지 않기에 여러 추측만 나오고 있다. 트럼프 당선 이후 한국에서 자체 핵무장론이 높아졌기 때문이란 분석과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이후 한국이 불안정해졌기 때문이란 해석 등이다.
우리 정부가 미국의 지정 자체를 최근에야 파악했다는 것도 문제다. ‘나사 풀린 정부’라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그렇기에 정부는 더더욱 조속한 철회를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미국 정부는 협력에 문제가 없다지만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다. SCL에 묶여 있으면 한국은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하는 길이 막힐 수 있다. 이땐 북핵 위협에 자체적인 적극 대응이 어려워지고 계속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해야 할 공산이 커질 수밖에 없다.
박준동 논설위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