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100년 기업 키우겠다면 상속세부터

입력 2025-03-16 17:48
수정 2025-03-17 00:21
지난해 12·3 비상계엄 이후 대통령 탄핵 이슈가 국가의 모든 중대사를 정지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 75년 만에 새로운 변화의 싹이 보인다. 바로 ‘상속세’ 문제다.

정부가 상속세제를 현행 ‘유산세’에서 ‘유산취득세’로 바꾸는 개편안을 내놨다. 상속재산 총액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각 상속인이 물려받는 재산에 과세하는 방식이다. 누진세율 체계에서 당연히 과세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배우자 공제를 5억원에서 10억원으로 증액하는 등 면세 지점도 높인다. 다만 정부 개편안의 국회 통과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여야 간 상속세 완화에 큰 접근을 이뤄왔는데, 정부가 불쑥 유산취득세로 개편하는 방안을 발표해 지금 논의 중인 유산세 전제의 공제 확대안은 원점에서 재검토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그래서 75년 만의 상속세 개편이 지리멸렬할지 우려된다.

2년여 전 상속세 완화에 관한 칼럼을 쓰려고 할 때 지탄이 심할 텐데 괜찮겠냐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 지탄을 걱정한 것은 상속세를 부의 세습으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관련하여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의장은 “국민 부담 경감을 위한 상속세 개편 논의는 활발하나 경제 활성화와 좋은 일자리 제공을 위한 논의까지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쏘아 올린 신중상주의와 자국 우선의 글로벌 경쟁에서 기업 영속성은 국가 지속의 중요 전제다. 중소기업중앙회의 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10년 이상 기업은 미만 기업보다 법인세 담세 능력이 최대 32배, 고용 창출력은 11배 높다. 더욱이 우리가 직면한 저성장 시대에 경제 버팀목은 장수기업이다. 실제로 일본이 1980∼1990년대 저성장을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장수기업이었다. 이 기간 장수기업의 도산율은 1%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기업의 영속성을 저해하는 주된 원인 중 하나가 상속세다. 성공한 중소기업인이 회사를 팔거나 접고 상속세 부담이 없는 해외로 나간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일자리와 기술도 해외로 유출되는 것이다. 지난해 말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중소기업인 799명 중 42%가 상속세 때문에 매각이나 폐업을 고려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60세 이상 기업 대표가 2012년 14.1%에서 2022년 33.5%로 증가하는 등 중소기업 오너들이 급격히 고령화하고 있다. 지난 2월 발표된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조사에서는 기업 승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면 향후 10년간 32만5000개의 기업이 소멸하고 이로 인한 실직자는 300만 명을 훌쩍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회도 개인 부담 완화만 다루지 말고 기업 영속성을 위해 ‘가업상속공제’를 적극 확대해야 한다. 일본은 인수합병(M&A)까지 기업 승계 수단으로 인정해 세제 우대를 지원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100년 이상 된 기업이 8만 개가 넘고, 이 중 일본이 4만5000여 개나 되는 이유다. 반면에 한국은 상장기업 7개를 포함해 16개에 불과하다. 상속세가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도 안 되는데 그로 인해 기업과 일자리를 위축시켜 역으로 소득세·법인세·부가가치세를 줄인다.

수동적 세수인 상속세를 줄임으로써 능동적 경제활동을 키우고 법인세 증가도 가져올 수 있다. 상속세 부담 완화는 기업 성장과 고용 확대를 돕고 국가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짓는다. 더 이상 가업 승계를 부의 세습으로 보지 말고, 기술과 경영의 대물림으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우리 사회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