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성장 정체되면 포퓰리즘 유혹…정치가 사회갈등 증폭"

입력 2025-03-14 17:53
수정 2025-03-15 02:59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사진)는 14일 “초저출산 등으로 경제 성장이 정체되면 인기 영합적인 재정 정책을 추진하려는 유혹이 강해질 수 있다”며 “최소한 출산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4명)으로 회복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경고했다. 정치권을 향해선 “갈등을 조율하지 못하고 오히려 증폭하고 있다”며 정치권의 인재 양성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총재는 14일 서울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와 대담하며 이 같은 의견을 밝혔다. 이날 대담은 ‘글로벌지속가능발전포럼(GEEF) 2025’의 프로그램으로 이뤄졌다.

이 총재는 저출생·고령화와 기후변화를 한국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문제로 거론했다. 그는 “낮은 출산율은 성장률 하락으로 직결된다”며 “초저출산이 지속되면 외국인 노동력 유입을 고려하지 않는 한 우리 경제는 저성장 고착화, 부채 폭증, 사회 갈등 심화라는 불가피한 종착점에 도달할 위험이 크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이날 포럼 기조연설에서도 “2024년 합계출산율(0.75명)이 지속되면 한국 잠재성장률은 2040년대 후반 0%대로 하락할 것”이라며 “2050년대 이후 마이너스(-) 성장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 “현 출산율이 이어지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2023년 46.9%에서 50년 후 182%로 치솟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 총재는 “경제 성장이 정체되면 분배 여건이 악화하고 세대·계층 간 갈등이 더 깊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이 이런 사회 문제를 단기적으로 풀기 위해 포퓰리즘 정책에 의존한다고 이 총재는 분석했다.

정치권을 향해선 날 선 비판을 내놨다. 이 총재는 “민주주의 발전으로 개인의 이해관계가 더 첨예해지면서 정치적으로 조율하는 프로세스가 필요한데, 한국은 정치가 갈등을 증폭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좋은 인재가 정치권으로 가 선출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총재는 청년이 결혼과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근본 원인으로 높은 경쟁 압력과 고용·주거·양육 불안을 지목했다. 그는 “초저출산율 0.75명, 과도한 수도권 인구 집중, 입시 경쟁 과열 등 세 가지 문제가 서로 깊이 연결돼 있다”며 “즉각 대응하지 않으면 인구 소멸, 항구적 마이너스 성장, 사회 갈등 폭발 등 사회가 용인하기 어려운 수준의 부작용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 총재는 이런 사회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기 위해 대학 입시제도 개편 등으로 수도권 집중 현상을 해소하고 대학에 입시 자율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