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똥 튈라" 초조한 개미들 피난처로 '우르르'…최고가 찍었다

입력 2025-03-14 18:01
수정 2025-03-15 02:56

금 가격이 사상 처음으로 트로이온스당 3000달러를 돌파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전방위 관세 전쟁으로 시장 불안이 커지자 안전자산에 수요가 몰린 결과다.

13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금 선물 가격은 장중 한때 전 거래일보다 0.59% 상승한 트로이온스당 3005.9달러를 기록했다. 금 가격은 올해 들어 14%, 지난해 대비 38% 이상 올랐다. 무역전쟁 충격을 피하려는 투자자의 안전자산 선호가 금 가격을 밀어 올렸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도 반영됐다.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시장 예상치를 밑돌아 조기 금리 인하 기대가 커졌다.


월가에서는 올해 ‘골드 랠리’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지만 일각에서는 신중론도 나온다. 맥쿼리뱅크는 올 3분기까지 금 가격이 트로이온스당 3500달러, BNP파리바는 2분기 3100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반면 투자자문사 게이브컬리서치는 역사적 평균을 감안할 때 금 가격이 반토막 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개미도 중앙은행도 피난처 찾아 金으로
트럼프가 쏘아올린 '골드러시'…사상 첫 3000달러 돌파“세계적인 골드러시가 시작됐다.”

프랑스 월간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최근 금값 상승세를 이렇게 평가했다. 19세기 각국 노동자가 금을 채취하려고 미국 캘리포니아로 몰렸듯 전 세계 자금이 금으로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발(發) 무역전쟁의 불똥을 피하려는 개인 투자자도, 지정학적 리스크를 헤지하려는 중앙은행들도 금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에 뛰어들며 금값이 고공행진하고 있다.◇금 ETF 3년 만에 최대 유입13일(현지시간) 세계금협회(WGC)에 따르면 지난달 글로벌 실물 금 기반 상장지수펀드(ETF)에는 94억달러(약 13조6500억원)가 순유입됐다. 3년 만의 최대 유입세다.

이는 관세 전쟁으로 각국의 경제 성장세가 꺾이자 피난처로 금을 택하는 투자자가 늘어난 결과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24% 상승한 미국 S&P500지수는 전고점인 지난달 19일부터 이날까지 10% 넘게 떨어지며 조정장에 진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자국 기업의 매출 성장세에 타격을 주면서다. 데이비드 윌슨 BNP파리바 수석원자재전략가는 “미국과 글로벌 경제 성장 기대가 둔화하면서 안전자산인 금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역별로는 북미 투자자들이 68억달러(약 9조9000억원)어치 금 ETF를 매수했다. 미국이 수입 금에 관세를 매기기 전 런던에서 뉴욕으로 금을 옮긴다는 소식에 뉴욕상품거래소(COMEX) 금값이 뛰자 투자자들도 추격 매수에 나섰다.

중국에서는 사상 최대 규모인 19억달러가 넘는 자금이 금 ETF에 몰렸다. 중국 검색엔진 바이두에서 금 검색량은 13년 만에 가장 많았다. 금 현물을 보유하려는 수요도 크다. 중국 인민망에 따르면 최근 중국 젊은 층에서는 값비싼 골드바 대신 휴대폰 스티커·목걸이 등 작은 금 액세서리가 인기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곧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기대도 금 가격을 밀어 올렸다. 이날 발표된 2월 미국 생산자물가지수(PPI)와 전날 집계된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모두 시장 기대치를 밑돌아 금리 인하 기대가 커졌다. 무이자 자산인 금 가격은 일반적으로 실질금리가 내려가면 상승한다.◇중앙은행도 공격적으로 금 매수각국 중앙은행도 공격적으로 금을 비축하며 ‘골드 랠리’를 이끌고 있다. WGC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중앙은행은 글로벌 금 수요의 약 5분의 1 수준인 1044t의 금을 매입했다. 15년 연속 순매수다.

중국은 2013년부터 꾸준히 미 국채를 팔고 대신 금을 확보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은 금 보유량을 44t 늘리고 미 국채 573억달러를 매도했다. 작년 말 중국의 미 국채 보유량은 7590억달러로 2009년 이후 최저치다.

이는 미국 제재를 피하고 달러 패권을 흔들려는 행보라는 게 중국 내외의 평가다. 왕칭 둥팡진청 수석거시분석가는 “인민은행의 금 보유 증가는 주권 화폐의 신용을 강화하고 위안화의 국제화 과정을 추진하는 데 유리한 조건을 창출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해 5월 중단한 금 매입을 6개월 만에 재개했다.

중국의 금 보유량은 지난해 2279t으로 2000년 대비 3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러시아 금 보유량도 422t에서 2322t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금을 가장 많이 매수한 국가는 폴란드로 90t을 사들였다. 폴란드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안전자산 확보를 위해 금을 공격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폴란드는 러시아의 동맹국 벨라루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유럽에서 러시아의 위협에 가장 노출된 국가로 꼽힌다.

아담 글라핀스키 폴란드 중앙은행 총재는 “금은 경제를 재앙적 사건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폴란드의 금 보유량 순위는 세계 23위에서 15위로 뛰었다.

수키 쿠퍼 스탠다드차타드은행 귀금속 담당 애널리스트는 “금 ETF를 통해 강한 금 수요가 이어지고 있다”며 “여기에 각국 중앙은행의 지속적인 금 매입, 지정학적 불안, 관세 정책 변화 등 요인이 금 가격을 계속해서 자극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