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부자' 호반그룹, LS 지분 사들인 까닭은

입력 2025-03-14 15:54
수정 2025-03-18 10:08
이 기사는 03월 14일 15:54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호반그룹이 ㈜LS 지분을 매입하며 LS전선과 대한전선 간 소송전에 긴장감이 더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LS전선이 대한전선에 대한 특허권 침해 및 기술 유출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협상 카드’로 활용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사촌경영 체제를 이어가며 오너일가의 응집력이 낮은 편인 LS그룹 특성을 노린 전략적 투자란 말도 나온다.
호반그룹, 경쟁사 아닌 주주로 목소리 높이나18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호반그룹 계열사는 2월부터 ㈜LS 지분 매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2월 1일부터 3월 13일까지 ㈜LS 지분을 매수한 기타법인의 순매수 물량은 약 84만주로 집계됐다. ㈜LS 상장주식 수의 약 2.6%에 해당한다. 해당 기타법인이 호반그룹 계열사로 추정됐다. 지난 1월 말까지 ㈜LS 주주명부에는 호반그룹 계열사 이름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호반그룹의 ㈜LS 지분 매입 사실이 LS전선과 대한전선의 특허권 침해 소송 2심 재판을 하루 앞두고 알려지면서 두 그룹 간 갈등이 주된 배경으로 꼽혔다. 재판에선 LS전선이 1심과 2심 모두 승소했다.

호반그룹은 2021년 대한전선을 인수해 전선 사업에 진출했는데, LS전선과 대한전선은 2019년부터 소송전을 벌이며 대립했다.

시장 관계자는 “호반그룹이 ㈜LS 지분을 매입한 사실이 알려진 시점이 공교롭다”며 “수년간 이어온 LS전선과 대한전선의 갈등이 변곡점을 맞이하는 상황에서 LS그룹 의사결정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일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전선이 LS전선 해저케이블 기술을 탈취했다는 의혹에 대한 경찰 수사도 조만간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경찰 수사 결과에 따라 LS전선이 대한전선을 상대로 조단위 소송전을 벌일 수 있다.

최근 LS그룹이 계열사 중복상장 논란에 불거진 가운데 이를 빌미로 호반그룹이 LS그룹 오너 경영진을 압박하는 카드로 쓸 수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상법상 지분 3% 이상을 확보한 주주는 임시주주총회 소집청구, 주주제안, 이사 해임 및 감사 해임 청구, 회계장부열람권 등을 행사할 수 있다.

국회 본회의에서 이사 충실 의무 범위를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이 통과된 만큼 호반그룹이 소수 지분만 보유해도 LS그룹에 대한 공세가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LS그룹 계열사 주주들이 중복상장으로 주주 가치가 훼손된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가운데 호반그룹이 LS그룹 오너 경영인을 향한 공세의 중심에 설 수 있다.
여러 가능성 열어둔 한수, 다음 행보는LS그룹은 대를 이어 사촌경영 체제를 이어오면서 오너일가 지분율이 0~3% 수준으로 흩어져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하다.

고 구태회 명예회장, 고 구평회 E1 명예회장, 고 구두회 예스코 명예회장 등 삼 형제가 2003년 LG그룹에서 계열분리한 뒤 2세대까지 세 형제의 장남이 9년씩 번갈아 가며 LS그룹 회장을 맡았다. 현재 구두회 명예회장의 장남인 구자은 회장 임기가 끝나면 3세대로 넘어가게 된다.

㈜LS 오너일가 지분율은 32.15%(특수관계인 포함)이다. LS그룹 오너 3, 4세들이 선대 지분을 쪼개 증여받으면서 지분율이 희석됐다. 가문별로는 구태회가(家) 11.1%, 구평회가 15.3%, 구두회가 5.6% 등이다. LS그룹 오너 3, 4세들이 지분을 증여받으면서 각 개인이 보유한 지분율은 희석됐다.

호반그룹은 과거 한진칼 경영권 분쟁에 뛰어든 경험도 있다. 지난 2022년 사모펀드 KCGI가 보유한 한진칼 지분 약 17.43%를 인수해 2대 주주에 올랐다. 당시에도 호반그룹은 단순 투자목적이라고 밝혔으나, 조원태 한진칼 회장 등은 호반그룹을 경계하며 우군을 꾸준히 확보했다.

호반그룹이 단기적 목적보다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두고 자산운용에 나섰다는 평가도 나온다. 호반그룹은 넉넉한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2023년 말 기준 호반그룹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 규모는 1조6225억원에 달했다. 호반건설만 7752억원을 들고 있다.

호반그룹이 보유한 한진칼 지분가치도 대한항공 경영 정상화로 크게 뛰면서 쏠쏠한 이익도 얻었다. 2022년 말 2900억원이었던 한진칼 지분 장부가치는 2023년 말 8500억원으로 상승했다.

IB업계 관계자는 “호반그룹은 하림그룹이 HMM 인수 도전 당시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하림에 우군 역할을 했다”며 “호반그룹 계열사 가운데 상장사는 대한전선이 유일해 사실상 경영권 분쟁 등에서 자유로운 만큼 그룹 오너일가를 상대로 한 투자를 과감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석철/최한종 기자 dols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