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남자 알브레히트에게도 순정은 있어요"

입력 2025-03-12 17:11
수정 2025-03-13 00:41

유니버설발레단이 올해 첫 정기공연으로 고전 발레 ‘지젤’을 선보인다. 서울에서는 오는 4월 18일부터 27일까지 열흘간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다. 보통 길어야 닷새인 발레 공연을 이토록 오래 올린다는 건 발레단에도 보기 드문 도전이다. 무대에 오르는 남자 주인공 ‘알브레히트’는 객원 무용수 전민철까지 포함하면 무려 7명. 정혼자가 있는 귀족 청년 알브레히트는 시골 아가씨 지젤을 만나 신분을 숨기고 연애하는 나쁜 남자다. 2008년부터 수석무용수로 뛰고 있는 발레리노 이현준과 이제 막 알브레히트로 데뷔하는 발레리노 임선우를 최근 만났다. 무대 위 경력 차는 크지만 두 사람은 누구보다 각별한 사이다. 연습실 캐비닛을 가까이 둔 이들은 이날도 각자 해석한 알브레히트에 대해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총 7명이 알브레히트 역할이현준은 “수석무용수로 승급한 뒤 가장 먼저 연기한 인물이 알브레히트”라며 “오래 연기한 만큼 연민과 애정을 느끼는 캐릭터”라고 말했다. 임선우는 “학생 시절 알브레히트로 로잔 콩쿠르에 출전했다”며 “발레단에 입단해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이었다”고 했다. 임선우는 유니버설발레단에 입단해 처음 지젤로 무대에 올랐을 때는 패전트(농부)였다. 젊은 농민 남녀 6인이 추는 ‘패전트 파 드 시스’를 선보인 그는 이제 귀족 알브레히트가 됐다.

두 사람은 ‘나쁜 남자’ 알브레히트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이현준은 자신이 연기해온 알브레히트는 두 종류라고 설명했다. 지젤을 너무 사랑해 자신의 신분을 감추는 순수한 남자와 생활에 무료함을 느끼다 예쁜 시골 여자를 만나는 경솔한 남자. 이현준은 “연륜이 쌓이면서 점점 전자인 순수한 알브레히트로 연기하게 된다”며 “진실한 마음으로 사랑했지만 잘못을 저지르고, 진정으로 참회하는 모습이 제게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고 했다. 임선우는 “처음 맡는 역할이기에 상상을 많이 하고 있다”며 “여자친구가 있는데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된 내 모습이 어떨지 연구 중”이라고 했다. 이현준은 알브레히트를 통해 인생을 다시 살게 된다고도 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실수하기 마련이고 알브레히트의 면면은 우리와 닮은 점이 많아요. 그의 고충과 그럴 수밖에 없었을 상황 등을 이해하려 합니다. 철들기 전 제가 한 실수들을 생각하고 극이 전개되는 가운데 저는 제 삶을 다시 살아요.” ◇연습 장면 보면서 서로 자극받아두 사람의 파트너도 베테랑과 신예로 나뉜다. 임선우는 지난해 말 ‘호두까기 인형’에서 호흡을 맞춘 솔리스트 이유림과, 이현준은 수석무용수 홍향기와 무대에 오른다. 이현준은 “발레 레퍼토리에서 남녀 주인공의 평균 연령이 많이 어려요. 주름을 걱정하기보다는 그 캐릭터 자체가 되려고 노력해요. ‘척’을 하면 진부해지기 쉽고, 나이의 간극이 비친다고 생각해서 아예 극 중 인물로 살려고 노력합니다.” 물을 마실 때도, 걸을 때도, 장례식장에서 헌화할 때조차 의식하지 못한 사이 알브레히트의 모습이 나오는 그다. 임선우는 “이유림과 대화를 많이 하면서 발레단 선배들에게 연기 코칭을 함께 받고 있다”고 했다.

이현준과 임선우는 서로 연습하는 장면을 보며 자극받기도 한다. 임선우는 “현준 형이 캐릭터에 몰입하는 걸 볼 때마다 자신만의 노하우와 확고한 생각이 있다는 점에 감동한다”고 말했다. 이현준은 “반대로 선우를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고 했다. 그는 “내가 확신한 부분,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한 부분이 아닐 수도 있다고 일깨워주기 때문”이라며 “임선우가 가진 간절함을 보며 나도 더 발전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은 발레를 할 때 가장 행복하단다. 이현준은 “발레를 할 때 제일 행복하고, 정신이 건강해지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어린 시절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 ‘1대 빌리’로 연기한 임선우 역시 비슷한 생각이다. “뮤지컬에서 너는 왜 발레를 할 때 행복하냐는 질문이 나와요. 그런데 빌리는 말로 설명이 안 되니까 춤을 춰 버리거든요. 저 역시 말로는 표현이 안 돼서…. 춤을 출까요?(웃음)”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