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관리 '벼랑 끝 전술' 통할까…홈플러스 운명 움켜진 채권단 [도마 위 MBK②]

입력 2025-03-14 09:57
수정 2025-03-14 17:13
이 기사는 03월 14일 09:57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을 신청한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는 시각이 짙다. '벼랑 끝 전술'을 통해 홈플러스의 주요 채권자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해 이자 비용을 깎으려는 의도다. "수틀리면 방을 빼겠다"는 식으로 홈플러스 점포의 건물주를 압박해 임대료를 낮추려는 속내도 있다. MBK의 뜻대로 이뤄질 진 미지수다. 최대 채권자 메리츠금융이 만만치 않은 상대인데다 계약 조건도 MBK에 유리하지 않아서다. 회생 절차를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법원의 결정도 변수다. 만만치 않은 채권단1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의 최대 채권자는 메리츠증권 등 메리츠금융그룹이다. 홈플러스가 메리츠에 진 빚은 1조2000억원에 달한다. 금리는 연 10% 수준이다. 지난해 인수금융 리파이낸싱에 난항을 겪던 MBK의 손을 유일하게 잡아준 게 메리츠이다보니 불리한 조건이지만 거부할 수 없었다.

업계에선 MBK가 이 채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업회생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고 보고 있다. 기업회생에 들어가면 금융채무는 동결된다. 한 달에 약 100억원에 달하는 이자를 메리츠에 주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연 10%대의 고금리도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 기업회생에 들어간 기업의 채권단은 일반적으로 고통을 분담하기 위해 채무 조건을 완화해준다.

메리츠가 MBK의 이런 전략에 순순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메리츠는 홈플러스에 1조2000억원을 빌려주면서 홈플러스가 보유한 모든 부동산 자산을 신탁 방식으로 담보로 잡았다. 신탁 방식으로 넘긴 자산에 대한 담보권은 기업회생과 무관하게 작동한다. 메리츠가 마음만 먹으면 홈플러스의 부동산 자산을 매각에 빚을 받아낼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금융사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시선과 정치권의 압박 등을 감안하면 무리한 매각 결정을 내리기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법원이 가장 큰 변수다. 서울회생법원은 홈플러스의 기업회생 신청이 들어온 지 11시간 만에 이례적으로 회생 절차 개시를 결정하는 등 회생 작업을 적극적으로 주재하고 있다. 담보를 탄탄하게 설정한 메리츠지만 법원이 조사보고서를 토대로 채권자들과 MBK의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메리츠에도 일부 희생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IB업계 관계자는 "메리츠가 신탁 방식으로 담보를 쥐고 있는 만큼 채권 회수는 보장해주되 조건 등에서 어느정도 희생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은행과 신한은행, 우리은행 등 다른 채권자들 사이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무엇보다 MBK가 자구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법원의 힘을 빌려 채권자들의 희생만 강요하고 있다는 점에 분개하고 있다. 한 대형 시중은행 관계자는 "경영 실패의 책임이 있는 주주는 아무런 자구 노력을 하지 않고, 채권자만 채무 조건을 조정하는 등 희생하는 방안이 은행 내부 품의를 통과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홈플러스 건물주는 '을'로 전락 MBK가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을 신청한 건 이자 비용 탕감 외에 매장 임대료를 깎으려는 의도도 있다. 홈플러스는 그간 비핵심 점포를 폐점하고, 매각하거나 매각 후 재임대하는 방식으로 유동성을 확보해 차입금을 갚아왔다. 직접 소유하는 매장이 줄고 매각 후 재임대하는 점포가 늘어날수록 임대료 부담은 커졌다. 홈플러스는 연간 임대료로만 3400억원가량을 지출하고 있다.

MBK는 홈플러스의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 임대료 인하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홈플러스 점포를 인수한 뒤 다시 임대해준 부동산 펀드 등은 이런 요구를 거절하기 어렵다. 당장 홈플러스를 내보내고 다른 임차인을 구하기도 어렵고, 이 점포를 매각해도 제값을 받기 쉽지 않아서다.

상업용 부동산 투자업계 관계자는 "대형마트가 들어가 있는 부동산은 용도를 전환하기도 어려워 오프라인 유통 시장이 침체된 현시점에서 다른 임차인 찾는 건 하늘의 별 따기"라며 "'임대료를 내려주지 않으면 점포 문을 닫고 다 같이 죽는다'고 임차인이 건물주를 압박하는 '갑을 관계'가 뒤바뀐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방식으로 임대료를 낮추면 홈플러스는 재무 부담을 덜어내지만 이는 고스란히 부동산 펀드 등으로 전가된다. 홈플러스 점포를 자산으로 담고 있는 부동산 펀드인 이지스코어리테일부동산투자신탁126호, 유경공모부동산투자신탁제3호, 제이알제24호기업구조조정부동산투자회사, 케이비사당·평촌리테일위탁관리부동산투자회사 등은 홈플러스에서 받은 임대료로 투자자들에게 배당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임대료를 낮추면 배당이 줄어 펀드 수익률이 떨어지고, 부동산 자산은 임대료로 가치를 평가하는 만큼 자산 가치도 떨어진다. 점포를 매각하는 것도 어렵지만 매각해도 시세 차익은커녕 원금을 건지기도 쉽지 않다는 얘기다.

금융감독원이 자산운용사들에 공문을 보내 홈플러스 점포를 담은 부동산 자산 현황을 제출하라고 지시한 것도 이런 이유로 업계 전반에 혼란이 가중될 것을 우려해서다. 자구 노력 없인 회생 진행 어려워MBK의 이런 벼랑 끝 전술이 통하지 않고, 최악으로 치달을 경우 MBK는 '빚 잔치'를 벌이고 한 푼도 건지지 못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메리츠가 담보권 실행을 선언하고, 담보로 잡은 61개 홈플러스 점포를 공매로 처분하면 메리츠는 홈플러스에 빌려준 차입금 1조2000억원은 충분히 회수할 수 있다. 해당 부동산 자산의 가치가 약 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메리츠가 회수하고 남은 자금은 상사채권과 금융채권을 변제하는 데 사용된다. 홈플러스 임직원의 임금과 퇴직금 등도 공익채권으로 우선 변제 대상이다. 이 다음 상환전환우선주(RCPS) 투자자의 몫까지 정산하고 나서야 주주인 MBK의 차례가 돌아온다. IB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평가액은 5조원에 달하더라도 실제로는 이런 매물을 한 번에 매각하기도 어렵고, 제값을 받긴 더욱 어렵다"며 "채권자들에게 자금을 상환하고 나면 MBK에 돌아가는 돈은 사실상 없을 것"이라고 했다.

메리츠가 사회적 혼란이 가중될 것을 우려해 담보권을 실행하지 않으면 홈플러스는 인가전 M&A 방식으로 매각 절차를 밟을 수도 있다. 매각 시에는 법원 주도로 매각으로 회수한 자금을 채권자 등에게 차등 분배한다. 이때도 후순위 주주인 MBK에 자금이 돌아갈 가능성은 크지 않다. 몸값을 대폭 낮추지 않으면 매각이 성사되기도 어렵다.

MBK로서는 법원의 도움을 받아 채권자와 의견을 조율해 이자 비용과 임대료 부담을 낮추는 회생계획안을 마련한 뒤 홈플러스 경영을 계속 이어가는 게 가장 좋은 시나리오다. 이를 위해선 MBK의 자구 노력이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한 구조조정 전문 사모펀드(PEF) 운용사 대표는 "MBK가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기업회생이라는 카드를 꺼냈지만 그 후폭풍이 예상보다 거세다"며 "선제적 구조조정이라는 표현으로 포장을 하더라도 자구 노력 없인 채권자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