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음악이 남았다

입력 2025-03-09 17:05
수정 2025-03-10 00:06

우리는 사랑을 확실하고 아름다운 말로 꾸미곤 한다. ‘영원한 사랑’ ‘운명 같은 사랑’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면서. 현실 속 대부분의 관계는 그렇게 낭만적이지 못하다. 후회, 망설임, 미련, 고민, 이런 모호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마음이 모여 사랑의 재료가 된다.

뮤지컬 ‘원스’ 속 주인공 남녀의 사랑 역시 그렇다. 남자는 사랑하는 여인이 미국 뉴욕으로 떠났다. 그녀는 새로운 인연을 만났지만 남자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생각하며 쓴 자작곡들이 상처로 남아 음악가로서 꿈을 가슴 속에 묻어둔다. 주인공 여자는 체코계 이민자로 남편과 헤어져 혼자 딸을 키우는 ‘싱글맘’이다. 여자는 가족이 함께하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겉으로는 헤어졌지만 마음속으로는 아직 이별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음악으로 피어난 사랑두 남녀는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의 한 펍에서 우연히 만난다. 남자는 여자의 호방하고 솔직한 매력에 빠진다. 여자 덕분에 차갑게 얼어붙은 마음이 녹기 시작해 다시 기타를 든다. 여자도 남자의 다정한 모습에 상처받았던 마음이 치유되기 시작한다.

운명 같은 만남으로 시작했지만 이 둘의 관계는 진흙탕을 걷듯이 답답하고 지지부진하다. 둘의 관계가 점점 깊어지자 여자는 용기를 내 남자에게 체코어로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안타깝게도 체코어를 알아듣지 못한 남자가 무슨 뜻인지 되묻자 이번에는 대답을 회피한다. 남자 역시 여자에게 “함께 뉴욕으로 떠나 음악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여자가 흔쾌히 응하며 “가족도 같이 데려가자”고 말하자 남자는 대답을 망설인다. 다가가고 물러서기를 반복하는 이 둘의 관계는 사랑이 꽃피려는 찰나 허무한 결말을 맞는다.

날것 그대로의 사랑을 묘사하고자 하는 의도는 음악에서도 전해진다. 공연은 오케스트라 없이 배우들이 모든 악기를 연주한다. 배우들이 무대에서 기타 줄을 튕기며 만드는 음악을 통해 오케스트라에서 느낄 수 없는 담백한 진솔함이 전해진다. 무대 위 사람들이 반주에 맞춰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라 자신의 음악과 이야기를 전하는 한 남녀로 느껴진다. 실제로 음악가이면서 원작 영화에 참여한 창작진이 만든 음악의 힘도 강력하다. 이 작품을 상징하는 주제가 ‘폴링 슬로울리(Falling Slowly)’의 반주가 나오는 순간 객석에서는 숨이 턱하고 멈추는 소리가 들린다. ◇담백하고 독특한 매력의 연주언어·문화적 차이 때문에 유머가 한국 관객의 코드에 맞지 않는 지점도 있었다. 체코계 이민자인 주인공 여자가 독특한 억양을 지녔다는 설정이 작중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다양한 억양이 자연스러운 영어와 달리 한국어의 이민자 억양은 다소 어색하게 다가온다. 원작 속 농담이 한국 관객에게 충분히 전해지지 못하는 장면도 있었다. 10년 만에 열린 두 번째 시즌인 만큼 더 많은 공연이 열리면 다듬어질 여지는 있다.

씁쓸하고 허무한 사랑의 단면을 담담하게 그린 작품. 두 주인공은 이름 없이 ‘남자’와 ‘여자’로 불린다. 두 주인공의 모습에 관객은 자신과 과거의 인연을 투영해서 보게 된다. 사랑을 묘사하는 방법과 무대 위 펼쳐지는 연주가 담백해 독특한 매력을 뿜어내는 공연이다. 뮤지컬 ‘원스’는 오는 5월 31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열린다.

구교범 기자 gugyobe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