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교육에 대한 한국 학부모들의 열기는 ‘광적’이라고 할 만하다. 어릴 때부터 학원을 보내 선행학습을 시키면 공부를 잘하게 될 것이란 믿음이 그 바탕에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40여 년 동안 지능 연구에 매진한 리처드 하이어 미국 캘리포니아대 어바인 캠퍼스 명예교수는 최근 출간된 저서 <지능의 신경과학>에서 유전자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조기 교육은 지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지능 발달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환경이 아니라 유전자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다시 말해, 선천적으로 부모의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은 사람이 머리가 좋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의 환경 요인이 지능 발달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증거는 놀랍게도 대단히 미약하다”며 “조기 아동 교육은 IQ(지능지수) 점수 상승의 지속적 효과를 확인하는 데 실패했다”고 말한다.
일례로 미네소타대연구팀이 따로 떨어져 성장한 일란성 쌍둥이 139쌍의 지능검사를 한 결과 이들 지능의 상관관계는 0.7로 유사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쌍둥이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했는데도 불구하고 지능 수준이 비슷하다는 것은 지능이 유전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근거가 된다. 다만 상관관계가 1보다 낮다는 것은 환경적 요인도 지능에 일부 영향을 준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능과 유전자 사이의 강한 연결고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전자의 역할을 부정하는 목소리가 컸다. 특히 1930~1940년대 “유대인은 선천적으로 열등하다”며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를 자행한 나치에 대한 도덕적 반성이 유전학의 거부감을 유발했다. 그러나 유전자가 지능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게 확실한 만큼 저자는 유전학적 방법 등을 통해 인간의 지능 향상을 도모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기술 및 경제 혁신에서부터 사이버 범죄 해결 등 국가적 과제는 가장 똑똑한 자들과 가장 똑똑한 자들의 대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능은 뇌의 어느 부분에 존재할까? 두뇌를 촬영한 영상을 들여다보면 뇌 뒤쪽의 두정엽과 앞쪽의 전두엽이 지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두정엽은 인간이 신체 기관을 통해 감각한 정보를 처리하는 역할을 담당하는데, 아인슈타인의 뇌에는 이같이 후방 부분에 더 많은 조직이 분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지능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특정 유전자를 찾는 연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저자는 뇌의 프로세스를 변화시켜 지능을 향상할 신생 기술도 다양하게 소개한다. 예를 들어 심장박동기와 비슷한 원리로 특정한 뇌 영역에 미세한 전기 자극을 가하는 방법이 있다. ‘뇌 심부 자극(DBS)’이라고 불리는 이 기술은 퇴행성 뇌 질환인 파킨슨병에 대한 임상적 적용을 입증했고, 일부 조건에서는 학습 능력과 기억력 개선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책은 지능과 관련된 다양한 연구 결과를 곁들여 전문 지식을 압축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각 장의 서두에 학습 목표를 제시하고 끝부분에는 주된 내용을 요약해 전달력을 높였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