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편의점, 캐나다에 넘어가나…위기의 세븐일레븐[비즈니스포커스]

입력 2025-03-21 09:12
수정 2025-03-21 09:13



세계 최대 편의점 업체 ‘세븐일레븐’이 흔들리고 있다. 편의점 업황 악화로 수익성이 악화하자 사업 정상화를 요구하는 주주들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위기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세븐일레븐을 노리는 기업까지 등장했다. 캐나다 편의점 기업인 알리멘타시옹 쿠시타르(ACT)는 웃돈을 주고서라도 세븐일레븐을 사겠다고 선언했다.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시도다. 세븐일레븐의 모회사인 세븐&아이홀딩스는 개인정보 유출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으나 마땅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 ACT vs 창업자 가문세븐일레븐이 인수합병의 타깃이 됐다. 지난해 실적이 악화하면서 세븐&아이홀딩스의 주주인 미국계 헤지펀드인 밸류액트캐피털, 베인캐피털 등이 압박을 한 게 그 시작이었다.

지난해 세븐&아이홀딩스의 매출 80% 비중을 차지하는 편의점 사업의 수익성이 악화한 게 원인이 됐다. 세븐일레븐의 핵심 지역은 일본과 한국, 미국이다. 일본에서만 전체 매장의 20% 이상인 2만1000개를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과 북미에서 각각 1만3000여 개의 매장을 운영 중이다. 현재 3개 지역 모두 상황이 안 좋다.

세븐&아이홀딩스의 지난해 3~11월 매출은 전년 86조 엔에서 91조 엔으로 5.8%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3% 감소한 3154억 엔에 그쳤다. 이 가운데 일본 내 편의점 사업의 영업이익은 1990억 엔에서 1829억 엔으로 8.1% 감소했다. 해외 편의점 부문의 영업이익은 2313억 엔에서 1569억 엔으로 32.2% 급감했다.

한국 법인인 코리아세븐의 지난해 1~3분기 영업적자는 528억원이다. 코리아세븐은 2022년 49억원, 2023년 551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행동주의 펀드는 단기간의 수익성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본업인 편의점 사업 수익성 제고에 집중하라고 주문했다. 이에 따라 세븐일레븐은 지난해 북미에서 400개 이상의 부진 점포를 폐점하기로 결정하고 슈퍼마켓 브랜드 ‘이토요카도’와 패밀리레스토랑 브랜드 ‘데니즈’ 등 비주력 사업 매각을 결정했다. 세븐&아이홀딩스는 매각 상대로 베인캐피털을 선정했다. 베인캐피털 측은 이들의 인수가를 7000억 엔(약 7조원) 수준으로 제시했다. 이들은 3월 말까지 최종 합의에 도달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와중에 캐나다 편의점 브랜드 서클K를 운영하는 ACT가 등장했다. 이 회사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세븐일레븐을 인수하겠다고 선언했다. ACT는 전 세계 31개국에서 1만7000개의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다. ACT는 세븐일레븐 인수를 통해 미국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구상이다.

ACT는 지난해 7월 세븐일레븐 지주회사 일본 세븐&아이홀딩스 주식 전량을 6조 엔(약 58조원)에 취득하는 인수안을 제시했다. 세븐일레븐은 전 세계 20개국에 약 8만5000개의 점포를 보유하고 있어 세븐일레븐을 확보하게 되면 ACT는 단숨에 세계 최대 편의점 기업이 된다. 세븐일레븐의 전 세계 매장 수는 맥도날드나 스타벅스보다 2배 이상 많다.

업계에서 주목한 것은 ACT의 ‘인수가’다. 이전까지 세븐&아이홀딩스의 기업가치는 최대 300억 달러(약 40조원)에 그쳤다. 그런데 ACT는 이보다 100억 달러 이상 높은 금액을 제시했다. 업계에서는 주요 통화 대비 엔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ACT가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회사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세븐&아이홀딩스는 거절했다. 기업가치를 과소평가했다는 이유였다. 그러자 ACT는 3개월 만에 인수 금액을 7조 엔(약 68조원)으로 올렸다. 세븐&아이홀딩스 주식(2024년 10월 8일 종가 기준 2230엔)을 시세 대비 20% 높은 주당 2700엔에 매입하겠다는 파격적 제안을 했다.

사외이사로 구성된 세븐&아이홀딩스 특별위원회는 제안을 검토했고 캐나다 회사에 매각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세븐&아이홀딩스의 지분 약 8%를 보유한 창업자 가문이 인수를 추진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세븐일레븐 재팬의 설립자인 이토 마사토시의 둘째 아들인 이토 준로 세븐&아이홀딩스 부사장과 그의 자산관리 회사인 이토코교가 나섰다. 창업주 측인 이토 가문은 지난해 11월 세븐&아이 홀딩스에 공개매수를 제안했다. 나머지 주식을 전량 취득하고 상장 폐지하는 방안을 언급했다. 이토 가문은 최대 9조 엔의 자금을 모아 5월 정기주주총회까지 상장 폐지 안건을 결의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창업주 측에서 3조 엔을 출자하고 일본 주요 은행인 스미토모미쓰이파이낸셜그룹,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 미즈호파이낸셜그룹 등으로부터 5조 엔을 유치할 예정이었다. 일본의 2위 편의점 업체인 훼미리마트 운영사 이토추상사도 1조 엔가량을 출자하겠다고 밝혔다. ◆ 줄어든 선택지이토 가문은 3개월가량 자금 확보에 주력했다. 슈퍼마켓 사업을 매각하기로 결정한 것도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자금 확보가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지난 2월 이토추상사가 발을 빼면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토추상사는 기존 사업과 시너지 효과가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토 가문은 자금을 확보하지 못해 경영권 인수를 포기했다. 세븐&아이홀딩스는 “이토 준로와 이토코교의 실행 가능한 제안은 유효하지 않다”고 밝혔다. 니혼게이자이는 “이토 가문이 다른 대안을 모색할 수 있겠지만 자금 조달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세븐&아이홀딩스에 남은 선택지는 2개다. ACT에 매각하거나 독자 운영 체제를 유지하는 것. 일본인의 개인정보 유출 등을 이유로 캐나다에 넘어가는 것을 반대해온 회사는 ACT에 매각하는 것을 가장 마지막 선택지로 남겨놓을 것으로 보인다.

세븐&아이홀딩스의 주주들은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고 핵심 사업인 편의점에 집중해야 한다고 회사를 압박하고 있다. 매각을 결정하지 않는다면 연내 다수 사업을 정리하고 주주들이 만족할 수준의 신사업 계획을 내놓아야 한다.

세븐일레븐은 1927년 미국에서 설립된 편의점 브랜드로 1974년 도쿄에 1호점을 출점하면서 일본에 진출했다. 이후 1991년 일본의 슈퍼마켓 체인인 이토요카도가 세븐일레븐 운영사였던 미국 사우스랜드 주식 과반을 취득하면서 인수했다. 2005년 지주회사 세븐&아이홀딩스를 설립하면서 현재 지주사 체제를 완성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