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A, USA, USA!”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4일(현지시간) 의회 연설은 대선 유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화당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휘파람과 박수갈채를 쏟아내고 수시로 “USA, USA”를 외쳤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 말미에 “나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도록 하느님에게 구원을 받았다”고 말했을 때는 환호가 쏟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에 갈등을 해소하고 국정 운영을 함께하자고 요청하는 대신 “그들(민주당)은 앞으로도 우리 정책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며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다. 연설 초반 앨 그린 하원의원(민주당·텍사스주)은 항의하다가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의 지시로 퇴장당했다. 이후 민주당 의원들은 ‘왕이 아니다(No King)’ ‘거짓말’ 등을 적은 손팻말을 들고 침묵으로 항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자신의 관세정책과 ‘미국 우선주의’ 정책의 효과를 강조했다. “우리는 수십 년간 지구상 거의 모든 나라에서 사기를 당해왔다”며 한국을 콕 집어 “한국의 대미 평균 관세가 네 배나 높다”고 했다. 구체적인 근거는 밝히지 않았다.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지난 3일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된 최혜국 대우 국가(MFN)의 세율을 집계한 보고서를 냈는데, 이 자료에 지난해 기준 한국의 MFN 세율이 13.4%, 미국은 3.3%로 기재된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네 배’ 주장의 근거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는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않은 나라에 대한 것이다. 한국과 미국은 FTA를 체결했고 지난해 대미 수입품의 실효관세율은 0.79% 수준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틀린 주장을 한 것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 (교역)시스템은 미국에 공정하지 않다”며 4월 2일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기존 방침을 재확인했다. 특히 “그들이(다른 나라들이) 어떤 관세를 부과하든 우리도 그들에게 과세하겠다”며 “그들이 비금전적 관세(비관세장벽)를 부과하면 우리도 그들이 우리 시장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비금전적 장벽을 세우겠다”고 했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 관세뿐 아니라 비관세장벽까지 고려해 상호관세를 물리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또 “지난 몇 주 동안 미국에 1조7000억달러의 신규 투자가 결정됐다”며 보조금 등 인센티브를 통해 투자를 유치한다는 기존 정부의 생각이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대만 TSMC가 1000억달러를 신규 투자하기로 한 것을 언급하며 “우리는 그들에게 돈을 주지 않는다”며 “(반도체기업에) 수천억달러를 아무 의미 없이 주는 반도체지원법(칩스법)은 끔찍한 법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칩스법을 폐기하고 이 돈을 부채를 줄이거나 다른 데 써야 한다”고 했다. 삼성전자 등이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대신 받기로 한 보조금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동차와 관련해선 “미국산 자동차에만 대출이자 세금 공제 혜택을 주겠다”고 했다. 미국 차를 우대하고 수입차를 차별하겠다는 방침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 같은 방침이 현실화하면 한국의 ‘수출 투톱’인 반도체와 자동차가 모두 타격을 입게 된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