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장부를 제출하라는 고용노동부 요구를 거부하고 과태료를 부과받은 노동조합이 이의를 제기한 데 대해 법원의 판단이 엇갈리자 고용당국이 긴장하고 있다. 회계공시 제도를 비판해온 노조 측 반발도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산하 노조인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등이 고용부를 상대로 낸 복수의 과태료 이의제기 사건에 대해 건별로 엇갈린 약식 결정이 내려지자 양측은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정식 재판을 청구하기로 했다.
정부는 노조의 회계 투명성 확보를 위해 2023년 9월 소득세법 시행령을 개정해 회계공시 제도를 도입했다. 회계결산 결과를 공시하지 않으면 소속 조합원은 자신이 낸 조합비의 세액공제(15%) 혜택을 받지 못한다. 고용부는 제도 도입을 앞두고 조합원 1000명 이상 대형 노조를 대상으로 자율점검 보고를 요구했지만 대다수 노조는 불응했다. 노조의 자주성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고용부는 회계장부 표지 1장과 내지 1장을 요구했는데 자료를 일절 제출하지 않거나 표지만 낸 노조가 점검 대상 노조 327개 중 207개(63%)에 달했다.
현장조사까지 거부당한 고용부는 2023년 4월 위반 노조 52개에 과태료를 부과했다. ‘노조는 행정관청이 요구하는 경우 결산 결과와 운영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는 노조법 27조를 핵심 근거로 들었다. 이에 반발한 노조는 법원에 이의를 제기했다.
담당 판사의 판단은 엇갈렸다. 홍지현 서울남부지법 판사는 지난달 공공노련과 금속노련이 받은 과태료 150만원이 적법하다는 약식 결정을 내렸다. 홍 판사는 “행정관청으로부터 증빙자료 제출을 요구받고도 일부를 제출하지 않았음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같은 법원 황지애 판사는 한국노총이 표지를 제출한 점을 고려해 과태료를 낼 필요가 없다고 결정했다. 그는 “노조의 보고 의무와 자료 제출 의무를 동일하게 해석할 수 없다”며 “자료 일부 미제출을 보고 의무 위반으로 간주하면 서류 제출을 사실상 무한정 허용하는 셈”이라고 했다.
양측이 정식 재판을 청구하면서 회계공시 제도 관련 소송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28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대해 한국노총이 회계자료 제출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사업 지원을 중단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한국노총은 회계공시 제도에 대해 헌법소원도 진행 중이다.
박시온/곽용희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