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 전체를 돌아다녀도 못 삽니다.”
지난달 28일 찾은 서울 한강로2가 용산 전자상가. ‘PC 부품의 메카’로 불리는 선인상가 점포 10여 곳에서 엔비디아의 최신 그래픽카드 ‘RTX 5090’을 살 수 있냐고 묻자, 돌아온 답변은 똑같았다. 그래픽처리장치(GPU)와 D램, 열을 식히는 팬 등으로 구성된 그래픽카드는 고화질 PC 게임에 반드시 들어가는 필수 부품이다. ‘언제 살 수 있느냐’는 질문에 상인들은 “물건이 들어와도 정가의 두 배가 넘는 웃돈을 얹어줘야 하니 포기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월 ‘CES 2025’에서 들고나온 최신 게임용 그래픽카드 ‘RTX 50’ 시리즈가 시장에서 사라졌다. 용산 전자상가는 물론 전자부품 전문 쇼핑몰 다나와 등에도 ‘품절’ 표시만 잔뜩 붙었다.
1차적인 원인은 게임용 GPU 공급 부족이다. 그래픽카드 시장의 90%를 장악한 엔비디아는 GPU 생산을 대만 TSMC의 4나노미터(㎚·1㎚=10억분의 1m) 공정에 맡기고 있는데, TSMC의 생산 스케줄이 꽉 찼기 때문이다. 애플, 퀄컴 등 ‘큰손’들이 TSMC의 최첨단 공정에 핵심 칩 생산을 맡긴 데다, 엔비디아도 확보한 캐파(생산시설)를 그래픽카드보다 훨씬 비싸게 팔 수 있는 ‘인공지능(AI) 가속기’용 GPU 생산에 우선 배정해서다.
반면 그래픽카드 수요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미국 수출 규제로 GPU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중국 업체들이 한국에서 그래픽카드를 사재기하고 나섰다. 그래픽카드에 들어가는 GPU는 AI 가속기용 GPU보다 성능은 떨어지지만 기본적인 AI 학습에는 쓸 만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유통상이 물량 공급을 줄이고 가격을 올려 폭리를 취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에서 정가 2749달러(약 400만원)로 책정된 RTX 5090(기가바이트 어로스 마스터 모델)은 국내 온라인몰에서 859만원에 팔리고 있다. 소비자들은 온라인 게시판에 ‘정부의 유통망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황정수/김채연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