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는 발레로 풀어낸 안중근의 인간적 고뇌를 느껴보세요"

입력 2025-02-27 10:01
수정 2025-09-15 15:13
일제강점기 안중근 의사를 다룬 콘텐츠는 한국 대중의 큰 관심을 받아왔다. 발레로도 안중근 의사의 삶을 다루며 꾸준히 사랑받은 작품이 있다. M발레단의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 광복 80주년을 맞는 올해, 이 작품도 10주년을 맞았다.



이 작품은 클래식 발레 위주로 공연되는 한국 발레계에서, 창작 발레가 레퍼토리화에 성공한 사례다. 초연 후 사라지는 경우가 적지 않은 공연예술계에서 이같은 성과는 특별하다. 매년 이 작품을 올려온 M발레단의 양영은 단장(42)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은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서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르겠다고 한 유언을 모티프로 기획한 작품입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영웅을 내세운 작품인만큼 역사적 사실을 고증하고, 무용수들이 깊은 감정을 보여줘야하는 쉽지 않은 공연이에요."



올해 공연은 3월 15~16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열린다. 안중근 의사로는 발레리노 이동탁(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과 윤전일이, 안중근 의사의 아내 김아려로는 발레리나 김리회(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와 장윤서(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생)가 무대에 선다. 김아려 역에 신인 무용수인 장윤서를 발탁한 것은 M발레단으로서도 모험이다. 양영은 단장은 "노련한 윤전일씨와 프로 무대에 첫발을 내딛는 장윤서씨의 조화를 올해 공연의 뷰포인트로 기대해주셔도 좋다"고 했다.

10주년 공연. 올해 무대는 과거와 어떤 점이 확연히 다를까. 양영은 단장은 '안중근의 꿈 장면'이라고 답했다. "안중근 의사가 일본군 포로를 풀어주면서 위치가 노출돼 역습을 받고 전우를 잃으며 패배한 기록이 있어요. 연해주로 돌아오는 길, 심신이 힘든 시기를 춤으로 표현한 부분인데요. 올해는 인간으로서 고뇌하는 부분을 더 무겁게 가져가고 싶었습니다. 음악도 바꾸고 안무도 많이 수정했어요." 안중근이 문무를 겸비한 영웅이었다는 사실도 올해 무대에서 더 부각될 예정. 무예에도 능했지만, 동양평화론을 집필했듯 앞선 생각을 가졌던 사람이기에 그가 책을 집필하는 모습을 담은 감옥 씬이 추가됐다.



"이 작품을 이어올 수 있었던 건 이처럼 제작진과 무용수들이 머리를 맞대고 수정을 거듭할 수 있었던 시간 덕분이에요. 공연은 여러번 할수록 보완을 거치면서 완성도를 높여갈 수 있는데, 그 시간이 주어진 것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 작품은 지난 2015년 무용창작산실 우수작품제작지원작으로 세상에 나온뒤 문예회관과 함께 하는 '방방곡곡 문화공감 민간예술단체 우수공연 프로그램' 일환으로 목포, 여수, 제주 등지에서 무대를 이어갔다. 2021년 예술의전당과 함께 작품을 다시 제작하면서 2022년에는 대한민국발레축제 개막작이 됐다. 일회성 공연의 단점을 극복한 창작 발레이자 한국적 소재를 가졌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은 M발레단을 창단한 문병남 예술감독과 양영은 단장이 의기투합해 만든 M발레단의 첫 작품이기도 했다. 문병남 감독은 국립발레단 재직 시절, '왕자 호동'을 창작해 호평받고 발레가 탄생한 이탈리아에서 이를 선보인 경험이 있다. 이후 한국적 창작 발레 레퍼토리를 본격화하겠다고 맘 먹으며 M발레단을 설립했다. 양 단장은 "저 역시 예원학교 이후 박사과정까지 영국에서 유학하면서 발레 후발 주자인 영국 발레가 명성을 얻은 고유 레퍼토리를 접할 수 있었다"며 "한국도 한국을 대표하는 작품이 필요하다는 걸 느끼던 차에 문 대표님이 M발레단을 함께 만들어가자고 제안해 수락했다"고 했다.



안중근에 대한 콘텐츠는 차고 넘치는데, 꼭 발레로 봐야할 이유가 있겠느냐는 질문에 양영은 단장은 망설임없이 답했다. "발레는 말이 없잖아요. 말을 하지 않아서 전해지는 감동이 오히려 컸다고 관객분들이 말씀해주셨어요. 말이 생기면, 그 사람의 깊이가 전해지지 않을 수 있는데 발레는 무용수들의 춤과 몸으로 인물의 깊이를 관객에 공유한다고요. 말로 다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그 감정을 많은 분들이 느껴보셨으면 좋겠어요."

이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