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커버 스토리 ③ 탄소세, 무역전쟁 뇌관 되나
박훈 서울시립대 교수
“탄소세는 패권 경쟁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탄소세를 매개로 주요 강대국이 생산 거점을 자국으로 옮기거나 시장을 개방하려 한다. 기업은 탄소세를 비용 증가 요인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경영 패러다임 전환의 신호로 해석해야 한다.”
박훈 서울시립대 교수가 2월 18일 〈한경ESG〉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탄소세 도입이 탈탄소 경쟁력을 갖춘 산업과 기업을 보호하거나 육성하는 측면을 넘어선다는 의미다. 그는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미국의 외국오염관세법(FPFA) 등 탄소세 규제를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EU의 CBAM은 2025년 말까지 전환 기간을 끝내고 202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미국 역시 공화당 상원의원과 재무부를 중심으로 FPFA 도입을 검토 중이다. 특히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1월 인사 청문회에서 중국 등 국가가 생산과정에서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제품을 미국에 수출할 때 “탄소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패권 경쟁은 현재진행형
박훈 교수가 탄소세 강화 흐름을 경영 패러다임 전환의 신호로 해석하는 것은 기업경영에 미치는 파급력이 막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EU는 2018년 구글, 애플, 메타,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에 적용되는 정보보호 규정(GDPR)을 마련한 바 있다. 2019년부터는 유럽 일부 국가가 개별적으로 디지털세를 도입해 IT 기업에 부과했다.
EU가 공정 경쟁을 명분으로 도입한 두 제도의 파급력은 컸다. 미국 IT 기업은 고객의 데이터 이동권을 보장해야 했으며, 이는 독점 구조를 깨뜨리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메타(당시 페이스북)는 광고 없는 유료 구독 모델을 도입하는 등 경영전략을 상당 부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EU가 2021년 아마존에 GDPR 위반을 이유로 역대 최고액인 7억4600만 유로(약 1조1181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제재 수위를 높였기 때문이다.
박훈 교수는 이러한 패권 경쟁이 탄소세 영역에서도 반복될 것을 우려한다. 중국, 미국, 유럽 간 패권 경쟁 속에서 탄소세가 활용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미 상무부는 CBAM이 미국 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공개적으로 표명한 바 있다. 빌 캐시디 상원의원은 FPFA를 “중국의 무역 규칙 악용에 맞서기 위한 법안”이라고 설명했다.
무기화된 관세, 탄소세
FPFA는 알루미늄, 시멘트, 철강, 비료, 유리, 수소 등 6개 부문에 15%의 탄소세를 일괄 부과하고, 탄소집약도에 따라 최대 4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사실상 무기화된 관세라고 볼 수 있다. 국내 다수 전문가가 외국오염수수료법(Foreign Pollution Fee Act)을 원어 그대로가 아닌 ‘외국오염관세법’으로 해석하는 이유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탄소세는 국가 간 경쟁과 생산기지 이동에도 영향을 준다”며 “탄소세가 단순한 환경 정책이 아닌, 국가 간 패권 경쟁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미국은 전 세계 생산기지 역할을 하려고 하며, 이 과정에서 탄소세를 활용하고 유럽 진출을 고려할 때 장애가 되는 탄소 장벽도 허물려고 시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미국이 탄소세를 섣불리 도입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1기 당시에도 탄소세 도입이 논의되었으나 중단됐다. 2기 행정부에서도 연방 차원의 명시적 탄소세 도입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박 교수의 설명이다. 다만 그는 “주(州) 차원에서는 논의될 여지가 있다. 공화당이 강세인 지역에서는 기업 부담을 이유로 탄소세 도입에 소극적인 반면, 민주당이 강세인 지역에서는 환경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CBAM은 꾸준히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 교수는 “현재 독일을 중심으로 경제적 부담을 고려해 속도 조절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탄소세 제도가 강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유럽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규제 전반이 자리 잡은 상황에서 속도 조절은 가능하지만 방향 전환은 어렵다는 판단이다.
자금조달 비용에 영향
박 교수는 국제적으로 탄소세가 마련되면 탄소감축이 곧 비용 절감이자 경쟁력 확보 수단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탄소세는 산업의 경쟁력을 판가름하고 기업의 주력 제품 생산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탄소세가 고탄소배출 산업의 위축을 빠르게 불러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박 교수는 제품 기획 단계부터 탄소배출을 고려하는 ‘탄소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급망 전반의 탄소 데이터 측정 및 관리 역량 확보가 필수적이며,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 활용 능력도 경영의 핵심 역량으로 부각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재생에너지 100% 전환 이니셔티브(RE100), 과학 기반 감축목표 이니셔티브(SBTi) 수립 등 국제 이니셔티브 가입이 글로벌 거래의 필수 요건이 될 가능성이 크다. 또 기후 공시 강화 과정에서 탄소세는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끝으로 박 교수는 탄소세 도입 방식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탄소세가 단순한 조세 정책이 아니라 관세와 결합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과 미국 외에도 캐나다 등은 연방 차원에서 탄소세를 배출권거래제와 결합해 운영하고 있다.
그는 “기존에는 탄소세를 독립적 세목으로 신설하거나 교통세 개편을 통해 도입하는 방식이었다면 최근에는 관세나 부담금 형태로 강하게 적용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는 탄소세가 국제무역과 연계되며 표준화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박 교수는 “한국에서도 차기 정부가 유류세를 탄소세로 전환하는 등 세제개편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정부도 유럽과 미국처럼 탄소세를 강화해야 하지만, 기업과 소비자의 부담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정부는 점진적 탄소세 도입을 고려할 가능성이 크며, 에너지세 중심의 기존 구조에서 탄소세 중심으로 전환하는 논의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