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 1도 모르던 내가 VC관리역으로 성장하는 법 [VC관리역은 처음이라]

입력 2025-02-24 10:49
수정 2025-02-24 10:50
나는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했다. 친한 친구들이 경영학, 특히 회계를 공부할 때마다 "도대체 이 머리 아픈 걸 왜 배우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내 인생에서 재무, 회계, 세무 같은 경영학 지식이 전혀 필요하지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고, 그 자신감은 카카오벤처스 기획관리팀에 입사한 첫날, 보기 좋게 무너졌다.

투자 분야는 완전히 문외한이었던 터라, 모르는 용어가 수두룩했다. 업계에서 기본 중의 기본이라는 RCPS(상환전환우선주, 상환권과 전환권을 가진 종류주식)라는 용어조차 처음 듣고, 황급히 인터넷을 뒤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업계 신인이라지만, 정말 이대로 가다 간 큰일 나겠다 싶었다. 그래서 같은 팀 동료에게 스터디를 제안했다.

스터디는 각자 업무를 하면서 궁금했던 점이나 몰랐던 개념, 그리고 업계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모아 격주마다 돌아가며 발표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하나씩 배우다 보니, 처음엔 낯설고 어렵기만 했던 투자 용어들이 점점 익숙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공부하는 과정 자체가 새로운 배움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어떤 내용으로 스터디를 했는지 궁금해할 독자를 위해 스터디 일부 내용을 가져와봤다. 예를 들어,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벤처투자회사는 각 조합의 20% 이상, 운용 중인 총 자산의 40% 이상을 창업기업 등에 신주 인수 등의 방법으로 투자해야 한다. 따라서 투자를 집행할 때 해당 회사가 창업기업인지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창업기업은 설립 후 7년 이내의 회사이므로 설립일자만 확인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법의 정확한 정의를 따라가 보면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창업기업으로 인정받으려면 「중소기업기본법」상 중소기업이어야 하며, 「중소기업창업 지원법」 시행령 제4조(창업에서 제외되는 업종)에 해당하지 않아야 하고, 같은 시행령 제2조제1항의 기준도 충족해야 한다. 결국 ‘창업’이라는 개념 하나만 봐도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법률과 규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정확한 해석이 가능했다.

그렇게 4년이 흘렀다. 스터디에서 쌓은 공부의 흔적이 차곡차곡 쌓여 어느덧 70회를 넘겼다. 개념 정리부터 관련 법 조문, 판례, 실무에서의 적용 방식까지, 그동안 막연하거나 얕게 알았던 개념들이 스터디를 통해 정리됐고, 이제야 비로소 내 것이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내가 궁금했던 내용은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로 궁금해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이 스터디는 나뿐만 아니라 회사 전체적으로도 큰 자산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이런 가벼운(?) 스터디를 넘어 회계와 세무 지식에 대한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우리 팀은 분기마다 모회사에 연결 재무제표를 전달하는 업무를 맡고 있어, 다른 VC보다 회계와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펀드 출자자에게 이익을 배분해야 하므로 세무 이슈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여기에 더해 카카오벤처스 법인 자체를 운영하는 과정에서도 법인세, 퇴직급여, 연말정산, 차량 리스, 부가세 신고 등 기본적인 회계·세무 지식이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작년 10월, 3개월의 목표를 잡고 재경관리사 자격증 시험에 도전했다. 고등학교 이후로 이렇게 오랜 시간 집중해서 공부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난이도가 아주 높은 시험은 아니었지만, 관련 배경지식이 없는 나에게는 꽤 큰 도전이었다. 그래도 배운 내용이 실무에서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최선을 다했고, 다행히 합격할 수 있었다. (회사 동료들에게 얘기를 다 해 놓은 바람에 불합격했으면 정말 민망할 뻔했다.??)



전문직이 아닌 이상, 일반 사무직으로서 전문성을 쌓는 일은 모든 직장인의 고민일 것이다. 벤처캐피탈 업계에서도 많은 분들이 ‘나만의 강점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를 두고 깊이 고민한다. 관리역의 경우 단순한 서류 작업이나 데이터 입력이 많은 만큼, 이런 고민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카카오벤처스에서 일하면서, 벤처캐피탈 백오피스야말로 자신만의 전문성을 쌓기에 충분한 토양이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듯, 실제로 이 분야에서 멋진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선배들도 많이 만나볼 수 있었다.

나 역시 지금까지 부딪히며 쌓아온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실력 있는 관리역으로 성장하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 더 나아질 나 자신을 기대하며, 이 글을 마친다.

이화영 님은 인생 100세 시대에 재미없는 일을 평생 하고 싶지 않아 재밌는 일을 찾던 중 스타트업의 젊고 활기찬 기운에 매료돼 2020년 카카오벤처스에 입사했다. 한 손엔 따스한 사랑을, 다른 한 손엔 탄탄한 실력을 가지고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이 목표이며, 요즘은 어떻게 하면 더 똑똑하게 일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