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기본으로 두세 번 오는 분이 많은데 상당수가 시니어 고객입니다.”
지난 3일 서울 장충동에 있는 특급호텔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에서 만난 홍순영 반얀트리 스파 파트장은 “고급 스파에서 1년간 1000만원이 넘는 돈을 쓰는 시니어 고객이 적지 않다”며 이렇게 말했다. 반얀트리 스파는 ‘은발’ 시니어 고객층에서 멋스러운 여가를 보낼 수 있는 장소로 입소문이 난 곳. 80~90분짜리 1회 이용권 가격이 30만원을 훌쩍 넘는데도 이용객 10명 중 5명이 시니어 고객이다. 해외 여행·골프에 월 수백만원 쓴다18일 한국경제신문이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5060세대 30명을 대상으로 심층 설문한 결과 대부분이 취미 활동과 자기계발에 쓰는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경제력이 있고 교육 수준도 높은 ‘파워 시니어’가 은퇴 후 가장 먼저 찾는 취미 활동은 ‘해외여행’이었다. 33년 동안 중견기업에서 일하고 작년 말 은퇴한 문동호 씨(가명·59)는 올해 초 제주 둘레길과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한 달간 다녀왔다. 문씨는 “오랜 기간 직장 생활을 하며 계획한 일”이라고 했다. 1~2년 후 은퇴를 앞뒀다는 은행 고위 임원 강경수 씨(가명·58)도 은퇴 후 가장 먼저 할 일로 해외여행을 꼽았다. 강씨는 “당분간 과거 배낭여행을 하듯 아내와 함께 해외여행을 다니고 싶다”며 “그동안 아이들을 위해 아낀 돈을 아낌없이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 임원과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는 은퇴 후 골프를 즐겼다. 현직일 때 업무상 배운 골프를 취미로 삼게 됐다는 것이다. 시중은행 지점장 출신으로 은퇴 후 보험설계사로 재취업한 박종환 씨(가명·61)는 “한 달에 최소 두세 번은 골프를 친다”며 “주말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평일에 즐길 수 있다는 게 최대 장점”이라고 말했다.
은퇴 전부터 취미 생활과 자기계발 계획을 세운 시니어도 있었다. 신수철 씨(가명·61)는 작은 화실에 나가 그림을 그린다. 은퇴 후 여가생활을 위해 10년 전부터 배웠다. 신씨는 “재료비 등을 합쳐도 월 10만원이 채 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인 임대현 씨(가명·66)는 목공을 익혔다. 직접 도면을 그리고 마당 한쪽에서 나무를 깎는다. 임씨는 “집에 있는 웬만한 가구를 내가 직접 만든다”고 자랑했다.
법관 출신인 최상호 씨(가명·66)는 인공지능(AI) 공부에 진심이다. 그는 “노년층의 AI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이 남은 인생 목표”라며 “틈틈이 강연도 한다”고 했다. 첫째는 건강, 둘째는 경제력심층 인터뷰 응답자들은 파워 시니어의 조건으로 ‘경제력’을 주로 꼽았다. 대기업 임원으로 은퇴를 앞둔 노정수 씨(가명·56)는 “금전적으로 제약받지 않아야 노후를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다양한 문화, 사회 활동에도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사 출신으로 은퇴한 뒤 귀농한 이미정 씨(가명·64)는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자녀에게 손 벌리지 않아야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파워 시니어는 노후 생활을 위해 은퇴 전부터 적지 않은 현금 흐름을 만들었다. 소득원은 연금, 배당 소득, 재취업 등으로 다양했다. 박수영 씨(가명·61)는 “대학교수로 일한 남편의 연금이면 생활을 감당할 정도가 된다”고 말했다. 은퇴 후 월 소득이 1000만원이 넘는 사람도 많았다. 의사 출신인 백근택 씨(가명·70)는 “건강이 핵심”이라며 “많이 활동하는 노인일수록 건강한 노후 생활을 할 수 있는데, 이런 영향은 특히 75세 이후 두드러진다”고 조언했다. 박종환 씨도 “옛날엔 60세만 넘어도 뒷방 노인 취급했지만, 지금은 청년”이라고 했다.
강진규/정지은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