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자리 잃은 국산 오토바이 산업

입력 2025-02-12 16:44
수정 2025-02-12 16:45
‘고급·레저용 시장에선 미국과 독일에 치이고, 저가·소형 시장에선 동남아시아에 밀리고.’

국내 오토바이 기업의 현실은 이렇게 요약된다. 고급·레저용 시장은 BMW모토라드, 두카티, 할리데이비슨 등 브랜드파워와 기술을 겸비한 미국·유럽 업체에 상대가 안 되고, 배달용 시장에선 동남아산에 가격 경쟁력이 밀리기 때문이다.

1990년대만 해도 국내 오토바이산업은 활황이었다. 대림오토바이(현 디앤에이모터스)와 효성기계공업(현 KR모터스) 등이 연간 30만 대를 생산했다. 두 회사는 각각 일본 혼다, 스즈키와 기술제휴를 맺고 ‘대림혼다’ ‘효성스즈키’라는 이름으로 국내 시장을 잡았다. ‘혼다 커브’를 본떠 만든 대림의 ‘씨티 시리즈’는 배달 오토바이 대명사로 꼽혔다.

시장의 흐름이 바뀐 건 오토바이 수입 규제가 폐지된 2003년부터였다. 값싼 중국·대만산 오토바이가 대거 들어오자 국산은 점점 설 자리를 잃었다. 현재 토종 오토바이 업체의 점유율은 20%대에 머무른다. 그나마 50~125㏄ 소형 시장에서만 이름값을 할 뿐 대형은 BMW, 할리데이비슨 몫이 됐다. 수요가 많은 배달용 오토바이는 ‘혼다 PCX 천하’가 됐다.

이 때문에 디앤에이모터스의 2023년 매출(연결 기준)은 813억원으로 전년(1270억원) 대비 400억원 넘게 줄었다. KR모터스 매출(연결 기준)도 2022년 1170억원에서 2023년 784억원으로 감소했다. 업계 관계자는 “고급용 시장에선 기술력이 달리고 배달용 시장에선 원가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