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2026년은 충남 방문의 해다. 때 묻지 않은 자연, 사람 냄새 나는 마을, 곳곳에 묻어 있는 백제의 숨결. 쉼이 필요할 땐 언제든 이곳으로 와도 좋다는 듯 충남에서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당신이 찾던 그곳, 충남으로 떠날 때다.
찬란한 백제를 담다부여 궁남지에는 무왕의 서동요 전설이 깃들어있다. 용의 아들로 태어난 백제 서동(무왕)이 신라 선화공주와 국적과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이룬다는 이야기다. 궁남지의 겨울은 이들의 사랑만큼 특별하다. 연못을 휘감은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에 살랑이고, 때마침 내린 눈은 이불처럼 포근하다. 계절마다 첫인상을 달리하는 곳이기도 하다. 수천 송이 연꽃이 궁남지를 물들이는 7월이면 부여서동연꽃축제가, 가을에는 국화축제가 열려 운치를 더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지정된 부여 부소산성은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인 사비성이 있던 곳이다. 삼천궁녀 전설을 간직한 낙화암부터 영일루, 반월루, 고란사 등 백제의 유적이 산재해 있다. 백마강을 유람하는 황포돛배에 몸을 실으면 이 모든 풍경을 유유히 즐길 수 있다.
부여로 천도하기 전 63년간 백제의 심장을 지킨 건 공주 공산성이다. 가파르게 솟은 기암절벽과 이를 둘러싼 산성이 한 폭의 그림 같다. 4개의 성문 중 서쪽 문인 금서루로 입장하면 푸른 금강 전경이 와락 품에 안긴다. 2660m에 달하는 성곽 둘레길은 오르락내리락 쉽지 않지만, 공주 시내 풍경을 사방으로 조망할 수 있어 꼭 한번 오를만하다. 차로 5분 거리에 공산성과 함께 공주 백제역사유적지구에 속하는 무령왕릉과 왕릉원이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기억해야 할 그 이름, 유관순과 이순신
106년 전 그날, 독립의 함성이 다시 메아리친다. 천안은 유관순 열사의 고향이자, 일제강점기인 1919년 4월 1일 3000여 명의 ‘만세 함성’이 울려 퍼진 곳이다. 만세운동 발상지인 병천 아우내 장터와 마주한 목천읍에는 이날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독립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우람하게 독립기념관을 지키고 선 겨레의 탑을 지나면서 역사 여행이 시작된다. 독립기념관을 모두 둘러보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6개 전시관부터 겨레의 집·통일의 길 등 야외 전시시설까지 장엄한 규모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관내에 있는 3km 남짓의 단풍나무 숲길은 숨은 가을 단풍 명소다.
이웃 도시 아산은 충무공 이순신이 지키고 있다. 이순신 장군의 사당이 있는 현충사는 국보로 지정된 난중일기와 충무공의 영정이 봉안된 곳이다. 충무문, 홍살문, 충의문을 지나면 현충사 본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름드리나무와 눈 덮인 정원이 계속해서 발목을 잡으니 시간을 넉넉히 잡고 둘러보길 추천한다.
겨울 분위기를 만끽하기에 아산 공세리성당만 한 곳이 없다. 매년 연말연시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념해 성당 전체에 화려한 조명을 밝힌다. 2005년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꼽혔다. 충남도 지정문화재 144호로, 124년의 유서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복작복작 일상에 젖어 드는 곳
풍성한 먹거리, 북적이는 사람들, 정겨운 분위기는 시장에서만 마주할 수 있는 풍경이다. 예산에는 이보다 조금 특별한 시장이 있다. 예산이 고향인 외식사업가 백종원이 리뉴얼 프로젝트에 참여한 예산상설시장이다. 향토 음식인 국밥, 국수, 사과를 비롯해 다채로운 먹거리를 양껏 즐길 수 있다.
배를 든든히 채웠다면 몸을 움직일 차례다. 예당관광지는 출렁다리·모노레일·음악분수·조각공원 등 즐길 거리를 갖춘 종합 관광단지다. 추천 방문 시간대는 일몰 무렵. 저수지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면 시시각각으로 조명을 바꾸는 예당호 출렁다리가 찬란하게 빛난다. 밤을 수놓는 레이저 빔 영상쇼, 음악분수도 특별한 볼거리다.
바다가 아름다운 마을, 서산 해미(海美)를 든든히 지키는 해미읍성으로 떠나본다. 둘레 약 1.8km, 높이 5m의 거대한 성으로, 조선시대 3대 읍성으로 불린다. 평화로운 풍경 속에 천주교 박해의 아픈 역사가 함께 깃든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말 수많은 신자가 이곳에서 죽음을 맞았다. 성내에는 300년 된 회화나무가 한그루 있다. 천주교도들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모진 고문을 당한 나무로, 역사의 산증인으로 현재까지 자리하고 있다.
박소윤 한경매거진 기자 park.so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