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하락땐 손실 보장할건가"…기술 갖춘 중기, 단가인하 거부

입력 2025-01-30 18:18
수정 2025-01-31 01:25
고환율로 인한 해외 고객사의 단가 인하 요청을 거부하는 중소기업이 있다. 독보적 기술력으로 수출처를 다변화할 수 있어 특정 거래처의 단가 인하 압박에도 꿈쩍하지 않는 것이다.

기초화장품인 ‘선인장 세럼’으로 유명한 화장품 브랜드 ‘화미사’를 개발한 이엔에스코리아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매출의 90%를 해외에서 거두는 수출 기업으로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수익성이 더 좋아졌다. 지난해 480억원의 매출에 160억원대 영업이익을 올렸는데, 이 가운데 20억원이 고환율로 인한 환차익이다.

박준한 이엔에스코리아 대표(사진)는 “지난해 초부터 미국 중간 도매상들이 ‘고환율로 이익이 늘어난 만큼 제품 단가를 내려달라’고 요청해왔다”며 “그래서 환율이 다시 내려가면 우리가 보는 손해를 보전해준다고 약속하면 단가를 인하해주겠다고 받아쳤다”고 말했다. 이어 “환율 상승은 어디까지나 외부 환경 변화에 따른 것인데 그걸로 제품 단가를 논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하니 이후로 단가 얘기는 꺼내지도 않는다”고 했다.

박 대표가 고객사 요청을 거절할 수 있었던 건 모든 제품을 유기농 재료로 제조하는 기술력 덕분이다. 일반적으로 유기농 제품은 유통기한이 6개월 정도로 짧은 게 단점인데 이 회사는 천연 추출물로 방부제를 만들어 유통기한이 36개월이다. 오래 쓰는 유기농 화장품이라는 입소문 덕에 이 회사 제품은 미국 세포라와 코스트코 등에서 인기가 많다. 미국 시장에서 대체 불가한 제품에 가까워 미국 도매상도 이 회사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박 대표는 “독창적 기술력이 없었다면 현재 같은 상황에선 ‘울며 겨자 먹기’로 단가를 인하해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환율 변동 위험에 대비해 환헤지 시스템을 갖춘 곳도 있다. 자동차 부품업체인 S사의 대표는 “완제품과 원자재의 단가를 환율 변동폭에 따라 자체 조정하는 시스템을 마련했다”며 “환율 변동에 따른 이익과 손해를 고객사와 상계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환율 변동에 따른 리스크가 작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민지혜/은정진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