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일 서명한 행정명령은 한국 배터리업계가 예상한 수위였다. 2030년까지 전기차 비중을 50%로 높이는 의무화 조항을 폐기하고, 전기차 충전소 구축 프로젝트에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는 방안 등이 대표적이다.
박태성 한국배터리산업협회 부회장은 2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향후 세부 규칙들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잘 살펴봐야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서명한 행정명령들은 당선인 시절 밝힌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오히려 담담한 분위기”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 섹션2-(e)를 통해 전기차 의무화 명령을 폐지하고, 불공정하게 지급되는 보조금을 없애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했다. 또 그린 뉴딜 정책을 종료하는 섹션7-(a) 항목으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인프라지원법으로 지급되는 보조금 형태의 예산을 ‘즉시 중지(immediately pause)’하라고 지시했다.
전날 배터리업계에선 섹션7-(a)가 IRA의 첨단제조세액공제(AMPC)를 의미하는지에 관해 혼선이 있었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선 미국에서 생산되는 배터리 물량(㎾h당 최대 35달러)에 따라 생산 기업에 세액공제 형태의 보조금을 줬다. 미국 생산 거점을 가장 많이 마련한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1조4800억원을 AMPC로 수령하며 실적을 유지했다. 실적 부진에 빠진 한국 배터리 업체에 유일한 버팀목인 셈이다.
업계에선 AMPC가 세액공제 대상에 해당하기 때문에 보조금을 계속 받을 수 있다고 보고 안도했다. 조세 정책을 바꾸려면 행정부의 명령이 아니라 의회를 통해 법안을 바꿔야 한다.
다만 전기차를 살 때 지급하는 대당 7500달러(약 1000만원)의 구매 보조금은 행정부 세부 규칙을 통해 지급 조건을 강화하는 형태로 대상 차종을 줄일 가능성이 크고, 미국 정부가 배터리 공장에 지원하는 대출 프로그램도 행정부 차원에서 지속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AMPC 규정은 향후에도 바뀔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미국 상·하원에선 공화당이 각각 과반을 차지하고 있지만 한국 배터리 기업이 투자한 조지아주 등의 공화당 소속 의원들이 이에 찬성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