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언한 대로 직진하는 트럼프…경제·안보 모두 '폭풍 속으로'

입력 2025-01-21 17:33
수정 2025-01-22 08:09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첫날, 설마설마하며 걱정한 일들이 대거 현실이 됐다. 트럼프는 취임사, 46개 행정명령, 기자회견 등을 통해 그간 공언해온 조치를 구체화하고 빠른 실행을 다짐했다. 관세 부과, 파리기후협약·세계보건기구(WHO) 동시 탈퇴, 파나마운하 회수 등 하나하나가 메가톤급이다.

선거공약인 만큼 막상 취임하면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폭풍’이 완화되고 유화책이 나올 것이란 일말의 기대는 무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 정치·경제 환경의 불투명성을 끌어올릴 일방적 파상 조치들을 ‘상식의 혁명’이라는 말로 당연시했다. “어떤 것도 우리를 가로막을 수 없다”며 “(우리의) 기세에 의해 도전 과제들이 모두 사라질 것”이라는 장담으로 더 아찔한 조치를 예고했다.

트럼프의 첫날 말폭탄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역시 ‘국익 최우선’이다. 취임사에서 미국·미국인을 41번, 지금(now)이라는 단어를 10번이나 썼다. 동맹·주변국에 대한 배려는 실종이다. 다음달 1일부터 캐나다와 멕시코에 관세 25%를 부과하겠다고 확인한 대목에서 잘 드러난다. 대외수입청을 신설해 외국의 돈을 미국으로 유입시키겠다는 노골적인 발언도 서슴없다.

국제질서 새판 짜기 의지도 분명하다. 취임사에서 “무역시스템 개편을 시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과 세계 경제를 살찌워 온 전후 자유무역 질서의 격변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자유 진영에선 금기에 가까운 팽창주의적 발언도 거침없이 쏟아냈다. 영토 확장 의지를 강조하면서 ‘명백한 운명’이라는 단어를 동원했다. 텍사스 병합 당시 아메리카 대륙 지배를 정당화할 때 쓰던 제국주의적 함의가 담긴 용어다. 현재 점령지를 기준선으로 삼는 트럼프식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안이 관철되면 유엔 중심 국제질서 자체가 위협받는다. ‘회원국은 자국의 국제 분쟁을 평화적 수단에 의하여 해결한다’는 유엔 헌장이 사문화하기 때문이다.

중국 견제도 핵심 메시지다. 파리기후협약 탈퇴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중국이 마음껏 오염을 배출하는 동안 (우리도) 미국 기업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파나마운하를 되찾겠다는 명분도 “우리는 중국에 파나마운하를 넘겨주지 않았는데 지금 중국이 운영 중”이라고 했다.

한국이 험난한 시험대에 오를 것임을 예고하는 언급이 많은 점이 더욱 걱정스럽다. 멕시코 관세 부과는 한국 기업들의 현지화를 통한 북미 우회 수출 전략에 큰 차질을 빚을 것이다. 대기업은 물론이고 수많은 중소기업의 멕시코 전진기지가 관세 부담에 고스란히 노출되기 때문이다. ‘미국 우선주의 무역정책’ 이행을 지시하는 각서에 서명하고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기존 무역협정 재검토를 지시한 점은 더 근본적인 위협이다. 한국을 꼬집어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대규모 대미흑자의 근간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사정권에 들 수밖에 없다.

외교·안보 리스크도 더 분명해졌다. 트럼프는 취임사에서 북한을 언급하지 않았다. 북핵 폐기가 우선순위에서 탈락할 경우 한국은 사활적 위기에 직면해야 한다. 실제 그는 취임식 후 기자들과 만나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으로 지칭했다. 북이 핵무기를 가진 현실을 단순 강조한 것이기를 바라지만 ‘완전한 북핵 폐기(CVID)’라는 우리 대북 전략과 상충하는 인식임은 분명하다. 만약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제거 수준의 ‘스몰딜’을 추진한다면 북핵을 영원히 이고 살아야 하는 우리에겐 말 그대로 재앙이다.

트럼프의 첫날 행보에서 기회 요인도 발견된다. ‘석유·천연가스 시추 확대’가 진행되면 에너지 가격 하락으로 우리 경제는 큰 짐을 덜 수 있다. 제조업 부활, 강력한 군대 재구축을 강조한 것도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제조강국, 방산강국 한국에 대형 호재다. 경제적 이익을 넘어 한국의 군사·안보적 가치를 확대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

문제는 거대한 쓰나미가 몰아치는데도 속수무책이라는 점이다. 기업인 몇 사람을 빼고 나면 취임식에 참석한 정부·국회 인사가 안 보일 지경이다. 탄핵 여파로 최상목 권한대행은 트럼프와의 전화조차 성사시키지 못했다. “보편관세 부과 준비가 덜 끝났다”는 트럼프 말에서 보듯 아직 만회할 기회는 남아 있다. 탄핵 올인 정치 싸움을 벗어나 예고된 트럼프 스톰 대비 체제로 신속히 이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