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1월 21일 13:35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금융당국의 기업공개(IPO) 제도 개선안을 놓고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의무 보유 확약을 건 기관에 대해 우선 배정하라는 건 시장 상황과 각 기관의 투자 전략을 무시하는 조치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기업가치 산정 능력보다는 운용자산 규모 등을 기준으로 한 수요예측 자격 요건도 도마 위에 오를 전망이다.
○"확약 여부는 각 기관의 투자 판단"
2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하반기부터 의무 보유 확약을 내건 기관에 대한 우선배정제도를 시행한다.
기관투자자 배정물량 중 40% 이상을 의무 보유 확약을 내건 기관에 우선 배정하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 내용이다. 이를 위반하는 경우 주관사가 공모 물량의 1%를 취득한 뒤 6개월 동안 의무적으로 보유하도록 한다.
IPO 시장 관계자들은 일률적으로 40%라는 기준을 모든 IPO 사례에 맞추라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증권사 IPO 본부장은 “기존에도 확약을 거는 기관들이 많다면 당연히 해당 기관에 최대한 공모 물량을 배분해왔다”며 “그동안 확약 비중이 작았던 건 공모주 배정 기준의 문제가 아니라 기관투자가의 각사 전략에 따라 나타난 결과”라고 말했다.
기관투자가의 성격이나 내부 투자 전략 등에 따라 주문 수량과 보호예수는 상이하다. 해외 기관투자가의 경우엔 내부 컴플라이언스상 보호예수를 걸지 못하는 곳들이 상당수다. 주관사가 확약을 걸어달라고 요청하더라도 이를 거부하는 기관이 대다수라는 설명이다.
40% 미달 시 주관사가 1% 공모 물량을 인수하도록 한 제도 역시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장 관계자는 “주관사가 1%를 의무 보유한다고 해서 시장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의문”이라며 “현실적으로 40%라는 비중을 맞추기 어렵다는 점을 알고 있는 만큼 주관사에 큰 부담을 지우기 어려웠던 것”이라고 봤다.
의무보호예수 비율이 높아지면 오히려 IPO 기업의 주가 변동성은 더욱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말도 나온다. 통상 IPO 기업의 상장 직후 유통 가능 물량은 전체 상장 주식 수의 20% 수준이다. 의무보호예수 비율이 과도하게 높아지면 유통 주식 수가 줄어들면서 소수 거래에 주가가 흔들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보호예수가 끝나는 시점에 다시 한번 주가 변동성이 확대될 수도 있다.
○운용자산 규모와 밸류에이션 능력 비례?
수요예측 참여 기관 자격을 등록 기간 및 위탁자산 규모로 제한하는 것 역시 무의미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반기부터 IPO 수요예측에 참여하려면 사모 운용사와 투자일임회사 모두 등록 기간 2년 이상, 위탁재산 50억원 이상(3개월 일평균)을 충족해야 한다. 또는 위탁재산 300억원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
IB 업계 관계자는 “단순히 운용자산 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이라고 해서 적정한 기업가치 산정 능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지금도 운용자산 규모가 큰 곳들이 오히려 수요예측 기능을 마비시키고 있는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업계는 금융당국에 기업가치 산정 기능이 있는 기관을 선별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번 제도 개정 논의 과정에서도 기관마다 전문적으로 기업가치 산정을 맡은 심사역 또는 조직의 유무 등을 토대로 판단하는 방안이 논의 테이블에 올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최종 방안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기준이 불분명하다며 제외됐다는 후문이다.
다른 증권사 IPO 본부장은 “그동안 형평성 위주로 치우쳐졌던 수요예측 제도 개정이 효율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바뀐 점에 대해선 긍정적”이라며 “실제로 시장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석철 기자 dols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