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제조업 재무장 나서야 할 때

입력 2025-01-19 17:35
수정 2025-01-20 00:06
‘신질생산력(新質生産力)’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처음 제기한 용어다. 2023년 9월 중국 동북부 헤이룽장성을 시찰할 때 나온 말이다. 한국에선 아직 낯설지만 현재 중국 산업정책의 핵심 키워드다. 지난해 12월 개최된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도 신질생산력이 2025년 주요 중점 과제로 제시됐다.

중국이 내세우는 신질생산력이란 첨단기술, 고효율, 고품질을 특징으로 하는 선진적 생산력을 가리킨다. 과학기술 혁신과 첨단기술 확보를 통해 양적 증대에 중점을 둔 전통 생산력을 질적으로 고도화한 개념이라는 게 산업연구원의 분석이다. 인공지능(AI), 항공우주, 첨단장비, 바이오, 양자기술, 로봇 등이 신질생산력의 구체적인 추진 분야다. 한국의 미래 먹거리와 겹친다. 한층 거세진 中의 파상공세신질생산력은 지난 10년간 지속된 ‘중국 제조 2025’의 바통을 잇는 차세대 산업정책이기도 하다. 중국은 이 기간 독일 첨단기술에 눈독을 들였다. 세계 4대 산업용 로봇 제조사 KUKA 등 2016~2017년 중국에 넘어간 독일 기업만 줄잡아 70개에 이른다.

‘중국판 디지털전환(DX)’으로 볼 수 있는 신질생산력 정책이 가속화하면 중국 제조업의 글로벌 공세 수위는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이미 한국 제조업은 중국의 등쌀에 몸살을 앓고 있다. 과잉 생산에 따른 밀어내기 수출 여파로 철강, 석유화학 등 국내 주요 기간산업은 깊은 내상을 입었다. 알리·테무의 초저가 공습도 밀어내기의 산물이다.

국내 중소 제조업계에는 ‘이미 경쟁에서 진 것 아니냐’는 자조적 열패감이 팽배하다. 한 실리콘 고무 제조사는 2년 전 범용 제품 생산을 접었다. 20~30% 낮은 중국산 제품 가격을 따라잡기 어려워서다. 중소 제조사들이 중국 현지에 제품 생산을 의뢰할 때 제조 공정의 노하우를 전달하면 ‘그건 옛날 기술’이라는 훈계조 답변을 듣곤 한다. 중국은 더 이상 우리가 알던 그 나라가 아니라는 얘기다. 한국은행이 200개 수출기업에 실시한 2025 수출 전망 조사에서도 중국 기업의 기술 경쟁력이 국내 업체와 비슷하거나(33.3%) 우려스러운 수준(49.7%)이라는 응답이 나왔다. 제조업 강화 정책 나와야미·중 갈등 여파로 한국 제조업이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전망도 근거가 불확실하다. 오히려 높은 관세로 미국의 장벽을 넘지 못하는 중국산 제품이 지금보다 더 헐값에 쏟아져 나올 공산이 더 크다.

기업의 자체적인 대응만으로 이처럼 거센 파고를 넘긴 벅차다. 문제는 국가적 대응 전략이 무엇인지 잘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되레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이라는 ‘자해 행위’가 벌어진 게 불과 작년 일이다. 노동 규제는 곳곳에서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인천의 조명 제조사는 연구개발부터 완료까지 6개월이 걸리던 생산 공정을 중국으로 옮겨 4개월 만에 끝냈다. 주 52시간제와 같은 규제가 없어서다.

1980년대 초 ‘반도체공업육성계획’과 2000년대 초 정보화 정책인 ‘사이버 코리아 21’은 대한민국 산업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리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서둘러 제조업 재무장에 나설 수 있는 선 굵은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서비스업이나 K컬처만으로는 5000만 명을 먹여 살리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