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IT기업 '숨은 쩐주' 누구길래…트럼프 쇼크에 '초긴장'

입력 2025-01-10 15:48
수정 2025-01-10 19:06
정보기술(IT)업계가 미국의 대중국 제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 국방부가 중국 군수기업 명단에 중국 업체인 텐센트를 포함해서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제재 수위에 따라 국내 IT기업의 해외 사업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텐센트는 국내 주요 IT업체의 투자사인 동시에 게임 유통 파트너다.○‘화웨이 제재’ 혼란 재연 우려10일 IT업계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지난 6일 134개 중국 군수기업 목록을 발표하면서 이 명단에 텐센트를 포함했다. 미국 국방부는 중국군이 민간단체로 위장한 기업이나 대학·연구 프로그램에서 첨단기술을 확보하는 군·민 융합 전략에 대응하고자 이 명단을 발표했다. 이 목록에 오른 기업은 내년 6월부터 미국 국방부와 거래할 수 없다. 2027년부터는 해당 기업이 공급망에 포함된 상품이나 서비스도 미국 국방부에 조달할 수 없다.


업계에선 미국이 텐센트를 제재할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2020년 6월 트럼프 1기 행정부가 화웨이 등 중국 군수기업 명단을 발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화웨이 장비 사용을 금지한 전례가 2기 행정부에서 되풀이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경우 텐센트와 밀접한 관계인 국내 기업에도 불똥이 튈 수 있다.

텐센트는 군수기업 지정이 미국 국방부의 “실수”라는 입장이다. 지난 7일 CNN에 따르면 텐센트는 “제재나 수출 통제와 달리 이번 목록 등재는 사업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미국 국방부와 협력해 오해를 해소할 것”이라고 했다. 텐센트는 12억 명이 쓰는 중국 메신저 앱인 위챗을 운영하고 있다. 시장평가 서비스인 마켓캡에 따르면 텐센트의 시가총액은 9일 기준 4375억달러(약 640조원)로 세계 20위 규모다.○한국 게임사 ‘톱5’ 모두 얽혀한국 IT업체의 텐센트 의존도가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게임사 시가총액 상위 다섯 곳 모두가 텐센트와 지분 투자, 게임 유통 등으로 얽혀 있다. 지난해 상장해 국내 게임 상장사 ‘톱4’로 올라선 시프트업은 텐센트가 지난해 9월 기준 지분 34.85%를 보유한 2대주주다. 텐센트는 지난해 7월 넷마블 2대주주로도 올라섰다. 크래프톤(14.61%) 카카오게임즈(3.89%) 등의 지분 또한 들고 있다. 텐센트는 카카오 지분 5.95%를 보유한 3대주주이기도 하다.

게임 유통에서도 텐센트는 큰손이다. 넥슨 ‘던전앤파이터’ ‘던전앤파이터 모바일’ 등의 중국 공급을 맡고 있다. 이들 게임이 흥행하면서 넥슨 매출에서 중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3분기 기준 42%로 한국(35%)을 제치고 최대가 됐다. 올 3월 넥슨이 내놓을 ‘퍼스트 버서커: 카잔’의 중국 유통도 텐센트가 맡는다. 엔씨소프트도 ‘리니지’ ‘리니지2’ 등의 중국 유통을 텐센트에 맡기고 있다.

IT 시장에 미치는 텐센트의 영향력은 한국에만 그치지 않는다. 텐센트는 라이엇게임즈의 최대주주다. 라이엇게임즈는 e스포츠 인기 게임인 ‘리그 오브 레전드’의 개발사다. 텐센트는 구글과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에픽게임즈의 2대주주이기도 하다. 미국 SNS업체인 레딧, 스냅 등의 지분도 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텐센트 제재가 강해지면 한국뿐 아니라 미국 IT기업에도 영향이 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 무역대표부(USTR)는 가짜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 명단인 ‘악명 높은 시장’에서 텐센트 위챗을 지난 8일 삭제했다. 이에 중국 관영 매체인 글로벌타임스는 전문가 표현을 인용해 “서로 다른 부처에서 텐센트를 목록에 넣고 추구하는 건 모순된 정책으로 미국 내 불일치를 보여준다”며 “이번 시장 목록은 사실에 기반을 두지 않고 정치화돼 중국 기업에 낙인을 찍는 도구가 됐다”고 9일 비판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