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요즘 그만큼 곤혹스러운 사람도 없을 듯싶다. 대통령 탄핵 찬성파와 탄핵 반대파 모두로부터 질타를 받고 있으니 말이다. 국무위원들은 “(헌법재판관 임명을) 왜 상의도 없이 혼자 결정하느냐”고 따져 묻는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전자공문을 덜렁 보내 “대통령실 경호처가 영장집행에 협조할 수 있도록 지휘해 달라”고 요구한다.
정치권과 광장에선 아예 동네북 신세다. 더불어민주당은 “내란 행위들이 유지되도록 방관하고 있다”며 직무유기죄로 국가수사본부에 고발했다. 여차하면 다시 탄핵카드를 꺼낼 가능성도 내비친다. 국민의힘은 그가 헌법재판관 2명을 임명한 것에 대해 몹시 언짢은 분위기다. 광장에선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 모두 그를 비난한다.
이런 상황에서 최 대행은 “국민과 역사의 평가만 두려워하겠다”(1월 7일 국무회의)는 자신의 행동 기준을 제시했다. 정쟁에는 거리를 두되 경제 등 시급한 과제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지난해 12월 31일 “경제와 민생위기 가능성 차단이 필요하다는 절박함에서 헌법재판관 2명을 임명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는 왜 역사의 평가를 들고 나왔을까. 최 대행은 엘리트 경제관료다. 서울대 법대를 수석 졸업할 만큼의 실력을 갖췄으면서도 사법고시가 아닌 행정고시를 선택했다. 일찌감치 ‘똑부’(똑똑하고 부지런함)형 인재로 꼽혔다. 김진표 부총리, 강만수 장관, 현오석 부총리, 최경환 부총리 시절 비서관이나 정책비서관으로 근무할 정도로 윗사람들의 신뢰도 두텁다.
그런 그에게 트라우마가 있다.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이던 2015년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의 지시로 미르재단에 대기업 출연을 유도했다는 이유로 특검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이때 상처가 컸다. 계엄선포 직전 소집된 국무회의에서 가장 먼저 계엄에 반대한뒤 자리를 박차고 나온 것도, 대통령실 경제수석으로 재직할 때 메모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있는 것도, 최근 온갖 비판을 받으면서도 정쟁에서 애써 발을 빼려 하는 것도 이런 경험 때문으로 보인다.
중요한 건 그가 두려워한다는 역사의 평가다. 그가 내세운 평가의 기준은 경제와 민생위기 가능성을 차단하느냐 여부다. 상황은 녹록지 않다. 정부가 예상한 올 경제성장률은 1.8%다. 경제성장률이 2%를 밑돈 것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등 여섯 차례뿐이다. 기업들은 잔뜩 움츠러들고 있다. 경제 회생을 위해 정치권의 지원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그가 아무리 외면하더라도 반드시 결정해야 할 정치적 현안은 조만간 닥칠 게 분명하다. 더욱이 트럼프 2기 출범 등 변수는 산적해 있다.
물론 희망적인 지표도 있다. 달러당 1486원까지 올랐던 원·달러 환율은 1460원대로 내려왔다. 코스피지수도 1월 3일부터 5거래일 연속 상승했다.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 변화와 코스피지수 급락에 따른 반등이 주된 요인이라지만 항공기 참사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차분함과 경제위기 방어에 진력하는 진지함이 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 차분함과 진지함이 얼마나 시장의 신뢰를 얻느냐와 정치권의 거센 요구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도, 올 우리 경제의 명운도 달라질 전망이다. 안타깝지만 지금으로선 그렇다.
하영춘 한경비즈니스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