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충돌 막아라"…매까지 날려 새 쫓는 공항

입력 2025-01-09 17:43
수정 2025-01-10 00:23
스페인 말라가 코스타델솔국제공항의 조류퇴치팀(BAT)은 맹금류 46마리를 키운다. 조류 전문가인 가브리엘 페레스 페르난데스 팀장이 총괄하는 BAT 요원들은 정성껏 돌본 매를 매일 새벽 공항 주변 정해진 구역에 날려 황새와 갈매기의 접근을 막는다. 이처럼 길들인 매를 활용하는 생태적인 퇴치 방식은 항공기에 치명적인 조류 충돌(버드스트라이크)을 막는 데 효과적이라는 평가다. 그동안 총포와 폭음 경보기 등에 의존해온 국내 공항들도 이번 무안 제주항공 참사를 계기로 적극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항공업계와 스페인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미국 스페인 아르헨티나 등 해외 공항에서는 전통적 ‘매사냥’을 활용해 조류를 퇴치한다. 길들인 매를 날려 인근 다른 새떼에 공항을 ‘천적이 있는 구역’이라고 인식시키는 방식이다. 무안 제주항공 참사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조류 충돌이 지목됐지만 국내 공항에선 이런 생태적인 맞춤형 조류 퇴치가 전무하다.

말라가 국제공항은 1991년 BAT에 맹금류를 도입했다. 인근 과달오르세강 하구, 토레몰리스 해변, 말라가항에는 노랑발갈매기가 널리 서식하고,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을 오가는 철새도 많다. 페르난데스 팀장은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매는 최대 600m까지 올라가는데, 매일 정해진 경로를 따라 날면 텃새는 물론 대부분 철새도 효과적으로 퇴치할 수 있다”고 했다.

매를 활용한 조류 퇴치는 스페인어 문화권인 남미에서 흔하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엘팔로마르공항, 우루과이 카라스코 국제공항, 멕시코시티 국제공항 등이 대표적이다. 스페인은 이슬람 통치 시절 매사냥이 발달했고, 지금도 고급 스포츠로 인식돼 관련 전문가가 많다. 스페인 정부는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매사냥’을 등재하는 데 참여했다.

매를 활용한 조류 퇴치는 효과적이면서도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라는 평가다. 물론 사전에 공항 주변 조류의 생태를 면밀히 연구해야 한다. 말라가 공항에선 속도가 빠른 송골매와 대형 종인 세이커매의 교잡종을 활용한다. 이를 통해 덩치가 큰 노랑부리갈매기(최대 날개 길이 1.5m)를 효과적으로 퇴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최유성 국립생물자원관 국가철새연구센터 연구사는 “매나 모형 매를 활용하는 게 모든 상황에서 효과적이라고 볼 순 없지만 조류 특성을 잘 안다면 충분히 활용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국내 공항에선 여전히 총포와 소음기 위주로 조류를 퇴치하고 있다. 물론 다른 해외 공항도 사정이 비슷하다. ‘허드슨강의 기적’(US에어웨이즈 1549 사고) 이후 미국 당국은 당시 항공기와 충돌한 캐나다 기러기를 대규모로 사냥하기도 했다. 한 조류 전문가는 “인천공항은 맹금류 소리를 내는 드론을 활용하지만 다른 공항엔 폭음경보기 외에 별다른 도구가 없다”며 “그나마도 새의 학습능력 탓에 한계에 부닥친 상황”이라고 했다. 미국 시카고 공항 등 세계에서 속속 도입 중인 조류탐지 레이더도 아직 국내 공항엔 설치 사례가 없다.

코로나 엔데믹 이후 하늘길이 점차 열리면서 항공기와 조류의 충돌 사고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한국공항공사에 따르면 국내 공항의 조류 충돌 사고는 2021년 109건, 2022년 131건, 2023년 152건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이휘영 인하대 항공경영학과 교수는 “해외에서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조류 퇴치 기술을 도입하려면 공항별로 면밀하게 주변 조류 생태를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정희원 기자 to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