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제조자 개발생산(ODM) 업체인 C사는 설 연휴 전날인 이달 27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된다는 소식에 한숨을 쉬고 있다. K뷰티 특수로 해외 주문량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제품 출하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어서다. 이 회사 대표는 “가뜩이나 설 명절 때문에 영업 일수가 줄어서 생산 일정이 빠듯해진 상황”이라며 “물류회사도 쉬기 때문에 임시공휴일까지 추가되면 연휴가 길어져 제품 생산과 출하가 쉽지 않게 될까 봐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정부와 여당이 내수 경기 진작을 위해 설 연휴 전날인 이달 2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기로 8일 확정했다. 내수 부진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계엄과 탄핵 정국 및 항공기 참사 등 악재가 겹치며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되자 임시공휴일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임시공휴일 지정에 따른 경제 효과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중견·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영업 일수 감소에 따른 생산 감소가 우려된다. 장기간 연휴로 국내 소비 대신 해외여행 수요만 늘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례적으로 휴일 신속 확정정부와 여당인 국민의 힘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비상경제 안정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2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기로 확정했다. 내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주재하는 국무회의 안건으로 상정돼 심의·의결될 예정이다. 이번 임시공휴일 확정은 이례적으로 긴박하게 이뤄졌다.
통상 임시공휴일은 한달가량 전에 국무회의를 열어 확정된다. 하지만 이번엔 불과 2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임시공휴일 논의가 이뤄졌고 하루 만에 당정 협의에서 확정됐다. 당초 정부는 대통령실과 함께 이달 2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는 방안을 작년 11월부터 검토했지만 백지화했다. 하지만 계엄과 탄핵 정국에 이어 지난달 29일 발생한 무안 제주항공 참사는 정부가 임시공휴일 카드를 갑자기 꺼낸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정부는 소비 진작을 통한 경제 활성화를 기대하고 있다. 27일이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기본적으로 엿새간의 연휴가 가능해졌다. 금요일인 31일 연차를 쓰면 일요일인 다음달 2일까지 최장 9일간 쉴 수 있게 된다. 임시공휴일 지정에 따른 경제적 효과에 대해 정부나 국책연구원이 분석한 공식 자료는 없다. 민간 연구소인 현대경제연구원은 2020년 임시공휴일 지정의 경제 효과에 대해 생산 유발액 4조2000억원, 부가가치 유발액은 1조6300억원에 이른다는 보고서를 냈다. 하루 소비 지출은 2조1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통상 임시공휴일로 지정되면 소비가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 통계청의 실시간 소비지표인 나우캐스트에 따르면 2023년 추석 연휴와 개천절 사이인 10월 2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됐을 때 해당 주간(9월 30일~10월 6일)의 전국 신용카드(신한카드 기준) 이용액은 전년 동기 대비 6.0% 증가했다. 전주(9월 23일~9월 29일)에 1년 전 대비 20.7% 뒷걸음질 쳤던 추세가 급반전한 것이다. 당시 임시공휴일 지정으로 엿새 연속 쉬게 되면서 소비가 증가한 영향이 컸다. ○영세 자영업자, 중소기업은 반발여행·유통업계는 임시공휴일 지정을 환영하고 있다. 다만 해외여행 수요에 따라 국내 소비 향방이 갈릴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업계에선 원·달러 환율 급등과 항공기 사고 여파로 해외여행 대신 국내 소비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적지 않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백화점과 아울렛은 연휴 매출이 평일 대비 2~3배 높다”며 “대형 몰과 교외 아울렛이 큰 수혜를 입을 수 있고 편의점도 국내 관광지를 중심으로 매출이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임시공휴일 지정에 따른 조업일수 감소가 전(全)산업 생산과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2013년 대체공휴일 제도 도입을 앞두고 공휴일이 연간 3.3일 늘어난다고 가정시 연간 28조1000억원의 생산 감소와 4조3000억원의 인건비 추가 부담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공휴일 하루당 8조5000억원의 생산 감소가 발생한다는 뜻이다. 휴일에 일하는 근로자에게 통상임금의 150%에 달하는 휴일근무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도 또 다른 부담이다.
경기 화성의 선반 제작업체 P사도 내달 5일 납기를 앞두고 있어 하루가 아쉬운 판에 휴무일이 더 늘어나면서 일정을 다시 점검하고 있다. 이 회사 대표는 “영세 제조업체는 주문이 급하게 떨어지는 편이어서 임시공휴일엔 4시간 만이라도 공장을 돌리려 하는데 평일 인건비의 2배인 특근비가 나가야 한다”며 “이런 날은 근로자들의 생산성도 떨어져 이래저래 손해가 막심하다”고 하소연했다.
자영업자들의 반발도 적지 않다. 한 외식업계 관계자는 “이번처럼 연휴가 길게 이어지면 매출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은데다 일할 사람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기업과 공무원을 제외한 영세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들에겐 임시공휴일은 다른 세상 얘기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휴가·휴일 규정은 상시 근로자 5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5인 미만 영세 사업장은 휴일근무수당 지급 의무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이정선 선임기자 leeway@hankyung.com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