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크나큰 실수로 인해 많은 분께 불편함과 실망을 끼쳐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배우 박성훈이 사과했다. 눈물도 보였다. 본격적인 인터뷰 시작에 앞서 15분 넘게 최근 불거진 논란에 대해 해명과 사과를 이어간 박성훈은 해외 반응에 대해서도 "죄송하다"며 "제가 챙길 여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8일 서울시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 시즌2(이하 '오징어게임2') 인터뷰가 진행됐다. '오징어게임2' 홍보를 위해 마련된 자리였지만, 박성훈은 앞서 불거진 논란을 직접 해명하며 사과하는 것을 택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실수와 별개로 '오징어게임2'와 앞으로 공개될 시즌3에 대한 기대를 당부했다.
'오징어게임' 시리즈는 456억원의 상금을 걸고 목숨을 건 게임에 참석하는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 시즌2에서는 복수를 다짐하고 다시 돌아와 게임에 참가하는 기훈(이정재 분)과 그를 맞이하는 프론트맨(이병헌 분)의 치열한 대결,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진짜 게임을 담았다.
박성훈은 특전사 출신 트랜스젠더 조현주 역을 맡았다. 조현주는 성확정 수술을 마치기 위해 돈이 필요해 게임에 참여했다는 설정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리더십을 발휘하는 용감한 모습을 보이며 공개 후 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지난달 30일 그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게임' 시리즈를 패러디한 일본 성인 콘텐츠 포스터를 올리면서 논란이 제기됐다. 특히 소속사인 BH엔터테인먼트에서 "DM으로 받은 이미지를 소속사에 전달하려다 실수로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리게 된 것"이라고 해명하면서 비판이 더욱 커졌다. DM으로 받은 이미지를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리려면, 이미지를 휴대전화에 저장하고, 인스타그램 스토리 새 게시물 작성이라는 다소 복잡하고 시간이 걸리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작업이기 때문.
"나 조차 이해할 수 없는 실수를 했다"는 박성훈은 장시간의 해명을 마친 후에야 본격적으로 '오징어게임2'의 촬영 후일담을 전했다. 다음은 박성훈과 일문일답.
▲ 가장 기뻐할 시기에 논란의 주인공이 됐다.
작품과 캐릭터가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는 와중에 이런 일이 발생해서 굉장히 속상하다. 그리고 저희 팀 전체에게 송구스러운 마음이 크다. 주변 분들은 위로를 많이 해주셨다. '너를 응원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얘길 해주셨는데, 그 와중에 인복이 좋다고 생각하면서, 앞으로 갚으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미지를 저장해서 스토리로 올리는 것과 DM을 보내는 과정은 순서 자체도 다르다. DM 받은 원본을 공개할 생각은 없는 건가.
그게 후회되는 부분이다. 아예 저장도 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그냥 말로만 전했으면 어땠을까. 그런 후회들이다. 그때 받은 DM은, 너무 많은 사람에게 DM을 받고 있어서 찾지 못한다. 저는 평소에 주변 사람들과 DM도 많이 하고, 카카오톡도 많이 쓴다. 이전보다 DM으로 주고받는 경우가 훨씬 많아졌다. 비율로 따지면 반반 정도 되는 거 같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후회는 되지만 앞으로 어떻게 다가갈지는 고민해봐야 할 거 같다.
▲ 현주라는 인물은 공개 전까지 베일에 가려진 인물이었다.
한편으론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새롭고 큰 도전이 되겠구나 싶었다. 소중하게 생각해서 매력 있는, 누구나 좋아하는 캐릭터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가 있었다.
▲ 성소수자 역할에 대한 고민이 됐을 거 같다.
해외에서도 실제 트랜스젠더가 아닌 사람이 트랜스젠더를 연기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현주의 인품보다 트랜스젠더라는 설정만 보이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감독님은 제가 미팅할 때도 성전환 수술로 강제 전역한 변희수 하사의 얘기를 하셨지만, 그분을 참고하진 않았다. 제가 대학로에 있을 때도 성소수자 역할을 여러 번 했고, 그들에 대한 이해도가 낮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분과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누구보다 가슴 아팠던 기억도 있다. 추가로 조사도 하고, 자문하기도 했지만 누굴 모델로 삼진 않았다. 가장 조심한 건 현주가 절대 희화화되면 안 된다는 거였다. 가장 이타적이고 배려심이 강한 인물이었으면 했다.
▲목소리 변화도 없더라.
희화화되지 않도록 과도한 목소리 변조, 과도한 제스처를 경계했다. 아무리 호르몬 주사를 맞아도 목소리가 바뀌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 저같이 목소리가 낮으면 더 그렇다고 한다. 정말 긴박하고 극적인 상황에 놓이다 보니 절대 꾸며지지는 않는, 본능적으로 원래 가진 목소리가 나왔다.
▲ 가슴은 분장일까.
현주의 상반신은 본을 떠서 모형을 제작했다. 착용할 수 있는 형태로 해서 착용하고 촬영에 임했다.
▲ 준비하는 과정에서 액션도 나오고, 게임도 한다. 어떤 것들을 준비할까.
총격전을 준비하며 정말 놀랐던 건, 다들 모두가 능수능란하게 총을 잘 다루더라. 총을 못 다루는 배우가 거의 없었다. 우린 다들 한 번씩 군인이었던 적이 있던 터라. 그리고 제기차기는 처음 미팅 때 소품을 다 각자 게임 종목으로 쥐여주셨다. 연습을 해오라고 하셨고, 촬영 중간중간 했었다. 그런데 현주의 제기차기는 일반적인 게 아니라 다리가 묶인 상태에서 해야 했다. 그래서 더 어렵더라. 매니저의 오른발과 제 왼발을 묶어서 연습하곤 했다. 운동신경이 뛰어난 건 아니라 많이 늘진 못했지만, 최선을 다해 연습했다.
▲ 실제 본인이라면 게임에 들어와서 어떻게 했을 거 같나.
저는 겁이 많아서 1라운드하고 바로 집에 갔을 거 같다. 현주처럼 용기 있고, 결단력 있고, 리더십 있는 캐릭터가 아니다. 제가 그러지 못한 측면을 갖고 있어서 멋있었다.
▲ 해외에서 반응이 좋았다.
죄송한데 제가 찾아볼 여유가 없었다. 초반에 그런 일이 발생하기 전에는 찾아봤는데, '오징어게임2' 댓글에서도 재준이라고 불러주는 것에 대해서는 신기했다.
▲ 사람들이 전재준으로 부르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가끔은 사람들이 저를 놀리려고 이렇게 일부러 그러시나 싶기도 하다. 이제 현주로 더 불리길 바란다. 제 이름이 너무 흔해서, 딱 박히는 이름이 아니라 배역 이름으로 더 불러주시는 거 같다. 많은 분이 말씀 주시기엔 전재준이라는 이름과 외모가 어울려서 그렇다고 하는데, 저는 제일 유명한 박성훈이 되고 싶다.
▲ 전재준처럼 현주 캐릭터가 세계적으로 사랑받으면서 그 이미지가 굳혀지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
그 생각은 못 했는데, 그렇게 된다면 좋을 거 같다. 저는 아직도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편견을 가진 분들이 계신다면, 그들에 대한 시선이 누그러지는 캐릭터가 된다면 뿌듯할 거 같다. 제가 대학로에서 처음 김조광수 감독님의 '두결한장'(두번의 결혼식 한번의 장례식)이라는 작품을 했을 때, 그땐 편견이 좀 있었던 거 같다. 저에게도 게이 친구들이 있지만, 편협한 생각을 깨고 싶어서 도전하게 됐고, 그 작품을 통해 정말 많이 이해할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친한 게이인 친구가 보러왔는데 '너의 가장 중요한 성향 중 하나인데, 그걸 서른이 다 되도록 그 부분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던 기억이 있다.
▲ 황동혁 감독은 그 이력을 알고 캐스팅한 건가.
그건 아니고 KBS 단막극 '시네마희수'라는 작품을 보셨다고 하셨다. 거기에선 평범한 가장 역할이었는데, 신기했다.
▲ 전작 '눈물의 여왕'과 '오징어게임2' 촬영이 동시에 이뤄졌다.
아침에는 트랜스젠더 분장을 하다가 저녁에는 도끼눈을 뜨고 악행을 저지른다. 하루에 두편을 촬영하거나 잠 못 자고 밤새우고 이동해 촬영장에 가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그 경험이 재밌었다. 체력적으론 기복이 있었지만, 직업 만족도는 높았다. 두 작품 모두 기대작이었고, 양쪽 작품 모두 기라성같은 선배들의 연기를 바로 옆에서 볼 수 있어서 큰 학습의 장이었다.
▲ '오징어게임2'가 큰 작품이다 보니, 공개를 기다리며 기대한 게 있었나.
저의 개인적인 부분보다 현주를 어떻게 봐주실지 기대했다. 정말 많은 사람이 한 땀 한 땀 열심히 만들었다.
▲ 이정재, 이병헌과 연기 호흡은 어땠나.
현장에서 어떻게 하는지 보는 것만 해도 벅차오르는 순간이 있었다. 정상의 자리를 90년대부터 쭉 이어온 사람들은 그 이유가 있더라. 인성과 인품도 훌륭하시고, 주연배우로서 끌고 나가는 것도, 후배들을 챙기는 것도 다 놀라웠다. 존경을 넘어서 감격했다.
▲ 현주의 시즌3 활약을 기대해도 될까.
정말 죄송하지만, 기밀 유지 서약이 있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 '오징어게임2' 공개 후, 인스타그램 팔로우가 늘어나는데 이제 무섭다는 생각도 들을 거 같다.
배우로서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영향력이 커지고 있어 정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경각심도 든다. 과분한 사랑을 받아 감사한 나날이었다. 우쭐하거나 들뜨진 않았지만 일련의 상황을 겪는 게 저의 커다란 실수로 겪는 거지만, 초심을 다잡고 배우로 살아가는데 내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생각하는 시간이 됐던 거 같다. 한국에서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원으로서 어깨도 무거워지는 거 같고, 마음도 재정비할 수 있는, 지나고 나면 성장할 수 있는 시간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개인적으로 논란이 있었지만, '오징어게임2' 흥행이 이어지고 있다.
모든 것이 믿기지 않는 순간이다. 시즌2가 제작된 것도, 제가 참여한 것도, 이런 사태도 모두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냥 감사함 갖고, 다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초심을 되찾아보자는 생각을 했다.
▲ 차기작 '폭군의 셰프' 리딩이 미뤄져 하차설이 불거졌다.
미뤄진 건 국가 애도 기간이라 그런 거 같다. 그 외에는 정해진 게 없어서 말씀드리기 힘든 거 같다.
▲ 앞으로의 계획이 있을까.
전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개인적으로 즐거웠고, 그걸 즐겁게 봐주신 거 같다. 다음에도 색다르고 재밌는 캐릭터를 만나 즐거움을 드리고 싶다. 조금 허술하고 귀여운 캐릭터도 연기하고 싶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