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중국에 넘어가게 생겼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어.” (익명·70대 보수 집회 참가자)
“자기 뜻대로 안 된다고 계엄 선포하는 게 상식이야? 나라를 정상으로 되돌려놔야지." (강순자·70대 탄핵 촉구 집회 참가자)
낮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28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선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찬반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탄핵 반대" “이재명 체포하라”는 보수 지지자들의 구호와 “내란수괴 윤석열 체포하라”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뒤섞였다.
탄핵 반대쪽은 애국기와 미국 성조기를, 찬성 쪽은 응원봉을 손에 들었다. 탄핵정국을 바라보는 양쪽 집회 참가자들의 시각 차이에도 모두 “더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은 같았다. ○탄핵 반대 측 "계엄 적법"
보수단체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대국본)와 자유통일당 등은 이날 오후 1시부터 서울 세종대로 동화면세점 앞에서 '탄핵 반대 광화문 국민혁명대회'를 열었다. 숭례문오거리 방면으로 뻗은 세종대로 전 차로와 광화문역∼KT광화문지사 일대 모든 차로에서 남북으로 모여든 인파로 가득했다. 오후 3시20분 기준 경찰 비공식 추산 5만여명이 참가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건 적법했다고 주장했다. 공직에서 은퇴한 이선규 씨(70대·남)는 "선관위를 칠 방법은 비상계엄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대통령이 계엄을 진짜로 선포해 놀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21세기에 비상계엄을 해도 누구를 때려잡는 것도 아닌데 왜 내란죄가 성립되느냐"며 "윤 대통령이 참 잘한 일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되면 더불어민주당이 나라를 이끌게 될 것이란 두려움도 이들 사이에선 팽배했다. 익명을 요청한 70대 시민은 "유신 정권에 맞서 시위하던 사람인데도 오죽하면 이렇게 탄핵 집회에 나왔겠냐"며 "민주당이 집권하면 나라가 중국에 팔릴 것"이라고 격분했다.
대국본을 이끄는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는 이날 발언대에 올라 ‘국민저항 광화문 선언문’을 발표했다. 전 목사는 "헌법 13조에 따르면 동일한 범죄에 대해 거듭 처벌할 수 없다"며 "윤석열 대통령의 원상 복귀를 이 자리에서 선언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과 김민전 의원도 집회에 참여했다. 윤 의원은 연사로 나와 “그동안 우리 당이 광장을 외면한 것을 사죄드리며, 늦었지만 이제라도 광화문 광장에 나온 국민들과 뜻을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탄핵 폭주로 대한민국 헌정 질서를 교란시킨 민주당을 합심하여 막아야 한다”고 선언했다. ○모두 ‘나라 걱정’ 한마음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경복궁 방면으로 발걸음을 옮겨 광화문 마켓이 조성된 세종문화회관 앞을 지나면서부터는 탄핵찬성 집회 참가자들의 목소리가 겹쳐서 들리기 시작했다.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은 오후 4시부터 서울 광화문 동신각 앞에서 윤 대통령 탄핵 찬성 집회를 진행했다. 오후 5시 10분 기준 경찰 비공식 추산 3만5000명이 참가했다. 시민들의 자유발언과 갤럭시익스프레스, 이날치·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공연 등이 이어지는 집회 뒤 시민들은 헌법재판소를 지나 명동까지 행진했다.
어린 아이가 있는 가족들이 특히 눈에 띄었다. 초등학생 2학년과 4살짜리 아들을 키우는 강성덕 씨(41)는 "비상계엄 선포는 국민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행동이었다"며 "아이들에게 온전한 나라를 물려주고 싶다"고 했다.
응원봉을 들고나온 20·30 MZ들을 따라 손수 제작한 응원봉을 들고나온 어르신도 있었다. 70대 강 씨는 자전거 전조등이 붙어 있는 핸들바를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강 씨는 "앞으로 자식들이 살아가야 할 나라인데 군홧발로 제 국민을 짓밟으려던 대통령이 제정신이냐"며 "윤 대통령이야말로 처단 대상"이라고 했다. 후대에 어떤 나라를 물려주고 싶으냐는 질문에는 "평화가 있는 나라"라고 했다.
따뜻한 나눔도 이어졌다. 지난 주말 트랙터 상경 시위를 벌였던 전국농민회총연맹 측은 남태령 집회에 참여한 시민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았다면서 무지개떡 1만개와 음료수를 나눠줬다.
찬반 집회 참가자가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오후 3시10분께 지하철 1호선 시청역 개찰구 앞에서 한 농민이 “윤석열을 때려잡자”고 외치자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집회 참가자들이 멱살을 잡는 일이 발생했다. 경찰이 막아선 덕분에 격한 싸움으로 번지진 않았다.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