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새해를 앞두고 각종 대출 제한 조치를 속속 해제하는 가운데 대출 금리는 거꾸로 인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은행들이 대출 문턱을 낮추려 할 때 대출요건(제한 조치)과 가격(금리) 부담을 동시에 완화하는 전략을 펼치는 것과 대비된다. 은행들이 대출 공급을 확대할 준비를 하고 있지만, 최근 미국 국채 금리가 급등해 국내 대출 금리를 산정하는 기준인 은행채 금리가 오른 결과다. ○주담대 금리 오히려 올라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주기형(5년)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최근 열흘 사이 모두 0.1~0.2%포인트 상승했다. 국민은행의 주기형 주담대 최저금리는 이달 6일 연 3.84%에서 16일 연 3.79%로 떨어졌지만 이날 연 3.89%까지 올랐다.
신한은행의 주기형 주담대 최저금리도 지난 16일 연 3.87%에서 26일 연 4.03%로 0.16%포인트 상승했다. 같은 기간 하나은행은 연 3.43%에서 연 3.61%로 0.18%포인트 올랐고, 우리은행은 연 4.15%에서 연 4.3%로 0.15%포인트 상향 조정됐다.
소비자의 이자 부담이 늘어난 것과 달리 은행별 대출 제한 조치는 줄줄이 풀리고 있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그동안 1억원으로 제한한 생활안정자금 목적 주담대 한도를 내년부터 2억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국민은행도 동일한 완화 조치를 지난달 15일부터 시행 중이다.
하나은행은 중단됐던 비대면 방식의 주담대와 전세대출 신청을 이달 12일부터 재개했다. 지난 9월 이후 대부분 은행이 중단한 분양주택 전세대출도 내년 이후로는 신한·하나·농협은행 등에서 가능해졌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올해 하반기 대출 공급을 강하게 억제해온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규제가 연간 단위로 적용되기 때문에 내년 초엔 대출 공급 여력이 생긴다”며 “이에 맞춰 새해부터 대출 확대 경쟁에 나서기 위해 대출 요건을 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美 국채 금리 움직임에 영향”은행들이 대출 확대 경쟁에 나설 채비를 갖추면서도 금리는 거꾸로 인상하는 이유는 주담대의 조달 원가에 해당하는 은행채 금리가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5년 만기 은행채(무보증·AAA) 평균 금리는 이달 9일 연 2.889%에서 24일 연 3.124%로 보름 만에 0.235%포인트 올랐다. 지난달 25일(연 3.126%) 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0월에 이어 지난달까지 2회 연속 인하했는데도 국내 은행채 금리가 오른 이유는 세계 채권시장의 벤치마크(기준지표) 역할을 하는 미국 국채 금리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이달 6일 연 4.151%에 거래됐지만 24일엔 연 4.591%까지 치솟았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지난 18일 기준금리 인하 속도를 늦추겠다고 공언하며 매파적 신호를 보낸 결과다.
일부 은행은 이자 마진을 축소하면서까지 미국발 금리 상승 영향을 흡수하고 있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지난 23일부터 주기형 주담대 우대금리를 0.1%포인트 확대한 농협은행이 대표적이다. 농협은행의 주담대 최저금리는 23일 연 3.46%에서 연 3.39%로 떨어졌지만, 은행채 금리 상승으로 26일 연 3.44%로 반등했다.
한 시중은행 자금 운용 담당 임원은 “미국 국채 금리가 계속 오르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려도 주담대를 비롯한 국내 대출 금리가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