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희 대표 "쌀 전달은 이제 그만…직원이 기부 방식 정해요"

입력 2024-12-26 18:08
수정 2024-12-27 13:19
올해 말도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다. 연탄과 쌀 등을 소외계층에 전달한 뒤 사장님과 ‘인증샷’을 찍거나, 기부처 한 곳을 정해 몇억원씩 일시금을 전달하는 ‘통 큰 쾌척’이 국내 기업들의 전형적인 기부 패턴이었다.

이런 천편일률적인 직장 기부 관습을 바꾸겠다고 나선 스타트업이 있다. 기업 임직원 전용 기부 플랫폼 ‘기브앤매치’를 운영하는 마이아이비다. 지난 24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난 이 회사 박영희 대표(사진)는 “매칭기프트는 북미 기업에서 익숙한 기부 문화지만 한국은 아직 생소한 개념”이라며 사업을 소개했다.

그가 설명한 매칭기프트 방법은 이렇다. 가령 A직원이 마음에 드는 기부 단체를 정한 뒤 매월 1만원 혹은 2만원의 약정 금액을 기부한다. 그러면 회사도 A직원이 지정한 기부처에 약정한 금액과 동일한 액수를 함께 기부한다. 기부처와 기부금액을 직원이 모두 정하고, 회사는 이를 따르는 ‘구성원 주도형’이다. 기브앤매치는 직원이 클릭 몇 번으로 자유롭게 기부금액과 기부처를 지정할 수 있게 해준다. 몸으로 직접 봉사하고 싶다면 사내에서 함께할 직원을 모집하는 기능도 있다.

1973년생인 박 대표는 서울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조직심리학 석사 학위를, 미국 코넬대에서 인사관리(HR)·조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22년간 HR 분야에서 몸담았다. 2014년부터 2022년까지 SK하이닉스 미국 실리콘밸리 법인에서 HR팀을 맡아 일하며 매칭기프트를 도입해 봤다. 구글과 애플, 스타벅스 등 유수 기업에 기부 플랫폼을 제공하는 글로벌 기업 베네비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는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좋은 직장문화를 형성한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기브앤매치 첫 이용 회사는 콜마홀딩스다. 지난 9월부터 전 직원에게 도입했다. 박 대표는 “화장품 제조 개발 기업이어서인지 피부 화상 환자를 지원하는 한림화상재단을 기부처로 선택한 직원이 가장 많았다”고 했다. 이처럼 직장 성격에 따라 구성원이 선호하는 기부처가 다양하다고 한다. 인사 총무 담당자로선 직원의 성향을 파악할 계기도 된다. LG유플러스, 풀무원 등 몇몇 중견, 대기업과도 내년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나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고민하는 기업에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이아이비는 비영리단체나 사회적 기업이 아니다. 엄연히 ‘돈 버는 것’을 추구하는 영리 회사다. 수익 구조는 고객사의 직원 수에 따라 책정되는 플랫폼 월 이용료에 있다. 박 대표는 “벌어들인 돈은 플랫폼이 잘 운영될 수 있도록 IT(정보기술) 서비스를 강화하는 데 투자하고 있다”며 “더 많은 기업이 고객사로 참여한다면 기업들의 기부 문화가 바뀔뿐더러 국내 기부금 총액의 ‘파이’도 훨씬 커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