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6번과 001번의 생존 게임…무궁화꽃이 '다시' 피었습니다

입력 2024-12-26 17:23
수정 2024-12-27 02:30

결핍을 채우려는 욕망은 인간의 본성이다. 욕망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돈의 가면을 쓸 때 종종 잔혹해진다. 이성을 무너뜨리고 폭력을 수반할 때가 많아서다. 넷플릭스 역사상 최고 흥행작 ‘오징어 게임’은 돈과 존엄을 맞바꾸는 인간의 비뚤어진 욕망을 순진무구한 아이들의 놀이로 풀어낸다. 26일 공개된 ‘오징어 게임 시즌2’ 역시 변한 건 없다. 시청하는 내내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돈과 빚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돈으로 쌓고 피로 얼룩진 계급 피라미드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것. 456번(성기훈·이정재 분)이 돈보다 귀한 ‘목숨값’을 받으러 게임에 돌아온다. 456번이 낸 균열은 돈의 먹이사슬을 끊는 시발점이 될 것인가, 아니면 그저 생채기에 그칠 것인가. 빵과 복권,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지옥‘속편의 딜레마’는 주로 이럴 때 생긴다. 익숙함이 진부함으로 바뀌거나, 새로운 서사가 명분을 잃거나. 3년 만에 돌아온 ‘오징어 게임 시즌2’는 이를 벗어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총 7화 중 1~2화까지 게임은 벌어지지 않는다. 대신 456억원을 손에 쥔 전 우승자 성기훈이 돌아온 이유와 게임에 참여해야 하는 당위를 설명하는 데 시간을 쏟는다. 긴 프롤로그지만 다행히 지겹지 않다. 시즌1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딱지맨(공유 분)의 존재감이 극 초반을 채운다.

성기훈은 게임장에 돌아가려고 딱지맨을 뒤쫓는다. 새로운 참가자를 물색하는 딱지맨은 태평스럽게 양손에 빵과 복권을 잔뜩 들고 공원 노숙자를 찾는다. 그는 이들에게 빵으로 허기를 달랠지, 실낱같은 가능성을 안고 복권을 긁을지 선택을 종용한다. 빵을 바닥에 버리고 짓밟는 광기 어린 모습을 보여주는 딱지맨은 “우리는 희망을 줬을 뿐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선택을 한 책임은 욕심 많고 돈은 없는 너희에게 있다”는 게임 주최 측의 계급논리를 상기시킨다.

성기훈과 조우한 딱지맨은 목숨을 건 ‘러시안룰렛’ 게임으로 성기훈에게도 이 논리를 들이민다. 시즌1이었다면 빵 대신 복권을 쥐었을 성기훈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게임에서 승리한다. 달라진 성기훈의 모습은 이후의 전개를 짐작하게 한다. 게임을 멈추기 위해 무기를 사거나 딱지맨을 뒤쫓는 일 외에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은 그가 “함부로 쓸 수 없는 사람들의 목숨값”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도 돈보다 앞서는 가치가 있다는, 게임 주최 측과 맞서는 신념을 보여준다. 456번 vs 001번, 폭발력 있는 투톱 체제 ‘오징어 게임 2’가 전편에 비해 가장 흥미로운 점은 본격적으로 프론트맨(이병헌 분)이 등장해 성기훈과 대립한다는 데 있다. 우승자를 제외한 모든 인물이 사망한 전작의 특성상 홀로 스토리를 끌어나가기 벅차진 이정재의 러닝메이트로 이병헌이 합류한 것이다. 이 ‘투톱’ 체제의 시너지는 상당하다. 전작의 오일남(오영수 분)처럼 프론트맨도 오영일이라는 이름과 001번 번호표를 달고 게임에 참가하는데, 쾌락을 좇던 오일남과 달리 성기훈의 신념을 꺾는 데 목적이 있어서 더욱 적극적으로 게임에 임한다.

게임에 돌아온 ‘고인물’ 456번에 맞서는 ‘관리자’ 001번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 역할을 하며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456번의 지식을 쓸모없이 만드는가 하면, 그의 반대편에 서서 좌절시키고 때론 든든한 조력자로 힘을 준다. 001번의 교묘한 공작은 게임을 중단시켜 모두를 살리겠다는 456번의 의지를 잃게 하고 ‘대의를 위해 작은 목숨은 희생할 수 있다’는 신념에 반하는 생각까지 불어넣는다. 신선한 게임, 즐길 거리 충분…그런데 사공이 많다전 세계가 ‘오징어 게임 2’를 기다리게 한 요소는 게임이다. 시즌2는 전작과 달리 단 세 번만 게임이 이뤄지지만 색다른 게임이 나와 흥미롭다. 두 번째 게임인 5인6각에선 딱지치기, 비석치기, 공기놀이, 팽이치기, 제기차기까지 초등(국민)학교 시절 운동회에서 해봤을 법한 게임이 종합세트로 나온다. 세 번째 게임은 ‘둥글게 둥글게 짝짓기’. 해외 시청자에겐 신선하고 국내 시청자에겐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게임 선정은 나름 성공적이다.

임시완, 강하늘, 이진욱, 박성훈, 양동근, 강애심, 조유리 등 호화 출연진의 연기도 볼만하다. 스타급 배우에게 각자의 서사를 입히느라 지루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무색하게 연출이 조화롭다. 특히 트랜스젠더 120번으로 이목을 끈 박성훈은 ‘신 스틸러’다. 다만 ‘약물 중독 래퍼’ 230번으로 메인 빌런 역할을 하는 T.O.P(본명 최승현)의 과한 설정은 이질적이라 아쉽다. 워낙 스토리가 넓고 등장인물이 많은 탓에 황준호(위하준 분)의 존재감이 증발해버렸다.

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