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차 업력의 배터리 제조 전문 A사는 해외에 생산기지를 구축하려는 계획을 이달 들어 본격화했다. 고환율 여파로 해외에서 배터리 셀을 사들여 배터리 팩을 만드는 현 생산 체계의 수지 타산이 틀어졌기 때문이다. A사 대표는 “달러 베이스로 원자재 도입 계약을 맺는데 최근 급속한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10%가량 손해를 봤다”며 “관리비와 인건비를 생각하면 적자여서 아예 선제적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고 말했다.
A사 사례처럼 중간재를 수입해 제품을 만드는 중소기업이 고환율 직격탄에 휘청이고 있다. 늘어나는 원가 부담을 납품가에 반영하지 못하는 탓에 “공장을 멈춰버리는 게 이득”이란 자조 섞인 얘기까지 나온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10~13일 수출 중소기업 513곳을 설문조사한 결과 고환율로 경영 피해를 봤다는 응답은 57.9%에 달했다. 특히 매출과 수출이 10억원 미만인 영세 중소기업은 각각 62.2%, 63.5%가 피해가 있다고 답해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충격파는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화장품 제조업자개발생산(ODM)을 하는 B사 대표는 “환헤지(위험 회피)가 불가능한 영세 기업은 온몸으로 환율 충격을 견뎌내고 있다”며 “중국 업체와의 경쟁 때문에 판매가를 올릴 수 없는 게 함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루하루 떨어지기만 바랄 뿐 묘책이 없다”고 덧붙였다. B사는 애초 올해 원·달러 환율을 1360원으로 예측했지만 지난 24일 환율은 1456원을 넘어섰다.
고환율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가늠할 수 없는 건 더 큰 고통이다. 너트, 볼트 등 파스너 부품을 만드는 신진화스너공업의 정한성 대표는 “환율 폭등으로 원자재 수입 가격이 4~5% 올랐는데 이게 시작점이 아닌지 걱정된다”며 “원가가 1%만 올라도 바이어가 계약을 망설이는 걸 감안하면 위기가 피부로 느껴진다”고 우려했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은 지난 9월 발표한 ‘중소기업 환율 리스크 분석 연구’에서 중소기업은 환율이 1% 오를 때 손해가 약 0.36% 증가하며, 이들 기업의 환차손 비중은 영업이익의 25%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송영철 연구위원은 “매출 규모가 작을수록 환율이 오를 때마다 환차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며 “환율에 취약한 중소기업 집단을 특정해 리스크 관리 교육이나 사례 공유, 환헤지 상품 개발 등의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종환 기자 won04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