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두 번째 출석 요구에 불응하며 수사 지연 전략을 노골화하고 있다. ‘수사보다 탄핵심판이 우선’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정작 탄핵심판 절차에도 소극적으로 임하고 있어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尹, 2차 불출석…野 “증거 인멸 중” 비난윤 대통령은 공수처와 경찰 국가수사본부, 국방부 조사본부로 구성된 공조수사본부(공조본)가 지난 20일 출석 시한으로 제시한 이날 오전 10시까지 공수처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공조본이 윤 대통령에게 소환 조사를 요구한 것은 16일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윤 대통령은 공조본이 보낸 출석요구서에 아무런 회신을 하지 않은 채 불응했다. 오동운 공수처장(사법연수원 27기)을 포함해 출석요구서를 보낸 차정현 부장검사(36기) 등 공수처 수사팀은 휴일인 이날 윤 대통령의 출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전원 출근해 대기했다.
윤 대통령이 정당한 사유 없이 두 차례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서 야권에선 공조본이 체포영장을 청구해 강제 수사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빗발쳤다. 더불어민주당은 곧장 입장문을 내고 “직무가 정지된 내란 수괴가 대통령 관저에서 증거 인멸에 몰두하고 있다”며 윤 대통령의 신병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도 자신의 SNS에 “공수처는 내란수괴에게 왜 그리 관대한가”라며 체포영장 청구를 촉구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일반적으로 수사기관에선 (피의자에게) 세 번 출석을 요구하는 것이 통상적인 절차”라며 “체포영장은 너무 먼 단계다. 아직 검토할 게 많다”고 선을 그었다. 3차 출석 요구 통지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공조본은 윤 대통령이 아직 변호인단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은 점, 이르면 26일 탄핵심판 관련 입장을 밝히겠다고 예고한 점 등을 고려해 대응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의도적 시간 끌기…탄핵심판 유불리는윤 대통령 측은 대통령이라는 신분 자체가 유지되는 만큼 수사보다 탄핵심판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밀실에서 문답 형식으로 이뤄지는 수사와 달리 탄핵심판은 공개 재판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이번 비상계엄의 명분과 정당성을 헌법재판관과 국민에게 직접 알리겠다는 의도에서다. 박근혜 대통령 수사도 탄핵심판 절차가 완료돼 대통령직을 상실한 상태에서 이뤄졌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절차에도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시간 벌기에 몰두하고 있다. 헌재는 윤 대통령 측에 비상계엄 당일 열린 국무회의 회의록과 박안수 계엄사령관이 선포한 포고령 1호 등을 이달 24일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했지만, 윤 대통령은 응하지 않았다.
헌재가 발송한 접수 통지 및 답변 요구서, 준비절차 회부 결정서, 기일 통지서, 준비 명령 등 탄핵심판에 필요한 각종 서류의 수령도 일절 거부했다. 헌재는 20일자로 이 서류들이 대통령 관저에 도달한 것으로 간주해 애초 예고한 27일 변론준비기일을 연다는 방침이다.
윤 대통령 측은 헌법재판관 3명이 공석이어서 불완전한 상태인 만큼 헌재 구성부터 완료돼야 한다는 주장도 펼치고 있다. 현 ‘6인 체제’에선 현직 대통령 탄핵심판 심리가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없다는 얘기다. 헌재는 앞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탄핵심판 사건 심리를 위해 헌재법 제23조1항의 효력을 일시 정지해달라며 낸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 만큼 6인 체제에서도 심판 진행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