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연의 시적인 순간] 유화 그리기와 꼬막

입력 2024-12-25 17:30
수정 2024-12-26 01:07
매주 월요일 유화를 그리기 위해 북촌에 있는 포스포스키라는 곳에 간다. 뜬금없이 웬 유화냐고 묻는 이가 있다면 악동뮤지션 찬혁의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 “이렇게 죽을 순 없어 버킷리스트 다 해봐야 해” 가사가 귀에 쏙쏙 박힌다. 맞다. 이렇게 죽을 순 없지. 시인으로만 살다 죽을 순 없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데 매수전 작가가 진행하는 ‘소복이 유화’ 워크숍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소개하는 글도 소박하고 따뜻하다. “저는 주로 차가 담긴 컵이나 책의 페이지 사진을 많이 찍더라고요. 그러다 어느 날 한 번 그려봤는데 재미있는 거예요. 소소하게 씨익 미소 짓게 되는 시간 되도록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작고 소박한 감탄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첫 시간에는 나이프로 캔버스에 바탕색을 입히는 작업을 하고 붓을 사용해 밑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지금껏 한 번도 그림을 그려본 적 없는 것처럼 모든 것이 새로웠다. 학창 시절에 유화를 그린 적이 없었다는 걸 유화를 그리고 나서야 알게 됐다. 기름으로 붓을 씻고 기름을 찍어 물감에 섞는 일이 고양이를 쓰다듬을 때처럼 느낌이 좋다. 좋은 건 반복하게 된다. 누구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만 아니라면 해가 뜨고 지도록 반복하고 싶다. 그런 면에서 유화가 한 번에 그릴 수 없다는 점이 특히나 마음에 들었다. 한 번에 그릴 수 없다는 건 한 번에 망하지도 않는다는 뜻이니까. 그리다 만 그림을 남겨두고 와서 1주일 내내 월요일만 기다릴 수 있으니까.

기다림 때문인지 추위에 몸을 떨며 작업해도 좋았다. 몸이 으슬으슬하면, 나는 감기약보다 꼬막을 찾는 버릇이 있다. 꼬막은 어디에서 왔나. 노을 속에서 떨어져 왔나. 어디에서 왔든 꼬막은 둥글고 차돌같이 단단하다. 꼬막을 언제 먹었더라.

워크숍이 끝나고 건너편 가게에서 손모아장갑 하나를 샀다. 크리스마스에 내리는 눈송이처럼, 장갑 이름이 내 이마를 차갑게 해준다. 꼬막도 참 예쁜 이름이다. 찾아 보니 ‘작은 집에 사는 것’이란 의미다. 작은 꼬막은 큰 추위가 와야 잘 자란다고 한다. 추위에 갯벌도 몸을 움츠렸다 폈다 해야 근육이 생기는 모양이다.

감기에 걸렸을 때마다 엄마와 나는 꼬막을 찾았다. 꼬막을 밥에 올리고 간장양념을 넣고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린 뒤 쓱쓱 숟가락으로 비며, 김에 싸 먹으면 금방 피가 돌았다. 겨울을 알리는 첫눈, 폭설 이후에도 큰 추위는 아직 오지 않은 것 같다. 영하 15도의 추위 속에서도 꼬막을 캐는 사람들이 있다. 벌교 사람들이 있다. 바다로 가 민박집을 하나 구하고, 거기서 등을 지지며, 저녁으로 꼬막비빕밥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떠오르는 벗들에게, 손글씨로 꾹꾹 눌러 담은 편지를 쓰고 싶다. 다들 어떻게 사는지.

어느 노부부가 하는 말을 엿들은 적이 있다. 꼬막과 세상은 같은 거라고 했다. 세상 모든 거짓이 썩어 부패할 때, 자연은 가만히 있지 않고 그것들을 데리고 간다고. 그래서 진실은 남고 흙은 반짝이며 꼬막은 커가는 것이라고.

그래 이 겨울이 가면, 태풍 한 번 크게 와서 부패한 세상을 휩쓸고 지나갔으면 좋겠다. 문득 박노해가 쓴 ‘꼬막’이란 시가 입 안에 맴돈다. “썩은 것들 한번 깨끗이 갈아엎는 태풍이 읍써” 나는 기다린다. 꼬막 같은 내가 살아갈 세상을 내어주는 자연의 힘을. 그리던 그림이 망해가고 있을 때쯤 매수전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요. 마르면 다시 칠하면 돼요. 백칠이 돼서 더 좋아요.” 어쩐지 유화를 그리고 온 날에는 그림을 다시 흰 물감으로 덮으며 새 마음 하나 얻었다고 편지를 쓸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