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특이점에 도달하면 국내총생산(GDP)이 연 20% 성장하지만 임금과 고용률은 급락할 수 있습니다.”
AI 경제학계 거물인 안톤 코리넥 버지니아대 교수와 함께 ‘일반 인공지능(AGI) 전환의 시나리오’ 논문을 공동 집필한 서동현 과장(34·사진)은 AI 시대 노동시장의 미래를 이같이 전망했다. 한국은행 조사국 고용분석팀에서 근무 중인 서 과장은 한국 경제학계에서 AI의 미래를 연구하는 기대주로 꼽힌다. 지난 24일 서울 남대문로 한국은행 별관에서 만난 그는 AI 과학과 경제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AI가 가져올 인간 사회의 변화를 예견했다.
서 과장은 논문을 쓰게 된 경위에 대해 “‘가까운 미래에 AI가 인간을 대체한다’와 ‘30년이 지나도 그렇게 안 된다’는 의견이 분분한데 그 핵심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논쟁의 핵심은 인간 두뇌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즉 AI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인간을 뛰어넘을 수 없는 일이 남아있을지에 대한 것”이라고 짚었다.
서 과장은 “AI가 특이점에 도달하기 전까지 임금 상승률은 계속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인간이 하던 중요하지 않은 업무를 자동화하면서 생산성은 증가하고, 이 같은 생산성 증가가 노동 대체 효과보다 크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어떤 임계점을 넘어서면 AI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아지고, 적은 일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노동 공급 과잉 상태가 되고, 노동의 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이 온다”고 부연했다. 노동자 10명이 하던 일의 80%를 자동화된 AI가 하고 나머지 2명 몫에 노동자들이 달려드는 상황이다.
서 과장은 “현재는 일과 소비가 밀접하게 연관돼 일자리 상실이 무섭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인간의 노동이 필요하지 않을 뿐 경제는 엄청나게 빠르게 성장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서 과장은 “AI가 발전해 아무리 많은 복잡한 일을 할 수 있게 되더라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유 영역이 남아 있을 경우는 얘기가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직업, 예를 들어 세밀한 수작업이 필요하거나 오랜 경험을 통해서만 할 수 있는 기술은 대체가 어려울 수 있다”며 “판사, 상담사, 종교인 등은 AI가 대체할 수 있더라도 사람들이 자동화를 거부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AI에 대체되지 않는 직업이 충분히 많다면 임금도 꾸준히 오를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서 과장 예측이다.
한국이 자동화에 따른 급성장의 과실을 맛볼지, 혹은 지금의 일자리를 유지할지는 사회적 선택에 달린 문제라고 서 과장은 내다봤다. 그는 “사회가 AI를 도입하지 않을 경우 성장률이 떨어지는 대신 임금 성장률은 높아질 수 있고, 반대 경우도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포트폴리오를 분산하듯 정부 차원에서도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 과장은 한국 고령화와 노동인구 감소의 대안으로 AI를 염두에 둬야 한다고 제언했다. 서 과장은 “수년 안에 AI 발전을 통해 중·단기적으로 경제성장률 하락 효과를 상쇄할 수 있다”며 “인구 감소 효과가 큰 직업은 AI를 적극 도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AI 시대에는 주어진 업무만 하는 인력은 AI와 경쟁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며 “뛰어난 한 명의 사업가가 AI를 통해 성과를 내는 1인 기업이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인엽/사진=이솔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