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24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사진)을 탄핵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자신들이 제시한 데드라인인 이날 국무회의에 ‘쌍특검법’(김건희 특검법·내란 일반특검법)을 상정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이날 바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기로 했다가 일단 보류했다. 26일 국회 추천 헌법재판관 세 명을 임명하는지 지켜보고 최종 탄핵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제1 야당이 정략적 이유로 국정 마비 우려와 국제사회의 신뢰 하락을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은 이날 의원총회를 열어 한 권한대행 탄핵소추안 발의를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한 권한대행은 앞서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서 “특검법 처리나 헌법재판관 임명처럼 법리 해석과 정치적 견해가 충돌하는 현안을 현명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여야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며 정치적 해결을 호소했다. 특검법 공포 또는 재의요구권 행사 시한은 내년 1월 1일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그때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다며 바로 탄핵 절차를 개시하겠다고 공식화했다.
다만 민주당은 오후 5시30분 탄핵소추안을 국회사무처 의안과에 제출하기 직전 갑자기 입장을 바꿨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26일 본회의에서 헌법재판관 후보 3인에 대한 임명 동의가 이뤄진 뒤 즉시 임명하는 절차까지 지켜보기로 했다”며 “국민 마음을 헤아려 26일 우리가 요구한 사항들이 이행되는지 인내를 갖고 기다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국회는 26일 본회의를 열어 헌법재판관 선출안을 의결할 예정이다.
민주당이 이날 탄핵안 발의를 보류한 것은 우원식 국회의장이 ‘절차적 하자’를 지적한 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한 권한대행에게 쌍특검법 공포, 내란 상설특검 후보 추천 의뢰, 헌법재판관 임명 등 세 가지를 요구해 왔다. 한 권한대행이 이를 거부하는 것이 탄핵소추의 명분인데, 아직 국회에서 헌법재판관 선출안이 의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한 권한대행 탄핵소추를 의결한 뒤 급격히 여론이 악화한 게 영향을 끼쳤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권한대행 탄핵안이 가결되면 권한대행은 차순위 국무위원인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맡는다. 헌정사상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사례는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윤석열 대통령까지 세 차례지만, 권한대행을 탄핵한 사례는 없다.
헌법재판관 임명 본 뒤 26일 발의 결정…野, 겉으론 '내란 혐의' 씌웠지만
사실상 특검법 공포 안했다고 추진…"조기 대선 매몰돼 자충수 될 수도"더불어민주당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을 서둘러 탄핵하려는 데 대해 당 안팎에서는 “성급하다”는 우려가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 내란 혐의 수사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일정을 앞당기기 위해 지도부가 무리수를 두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었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기 대선 전략에 매몰된 민주당이 24일을 ‘탄핵 데드라인’으로 공언하며 자충수를 둔 것이라는 지적이다. 민주당이 사상 초유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 카드로 가까스로 진정되고 있는 ‘12·3 비상계엄 사태’의 파장이 다시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만장일치 의총 2시간 만에 “탄핵 보류”민주당은 한 권한대행이 “내란에 공조했다”며 탄핵을 주장해왔다. 의결 정족수 논란을 피하기 위해 윤 대통령 직무정지 전 국무총리로서 행한 직무를 문제 삼았다. 김용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김어준 씨 유튜브 방송에 나와 “한 권한대행은 계엄 당시 국무회의를 소집했다”며 “위헌·위법한 계엄의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단순 공조가 아니라) 적극 가담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반면 한 권한대행은 당시 회의를 “절차적·실체적 흠결이 있다”며 정식 국무회의로 보지 않고 있다. 국무위원을 소집한 것도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막기 위해서라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내란 혐의를 한 권한대행 탄핵의 핵심 사유로 들었지만, 정작 ‘탄핵 버튼’을 누른 건 자신들이 제시한 데드라인(24일)까지 쌍특검법을 공포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시한은 정부 이송 후 15일 이내인 내년 1월 1일이지만 이를 기다리지 않고 특검법 미공포를 이유로 탄핵을 결심한 것이다. 한 권한대행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헌법과 법률에 따라 한 치 기울어짐 없이 이뤄졌다고 국민 대다수가 납득해야 한다”며 쌍특검법을 공포하지 않았다.
헌법재판관 3명의 임명을 거부할 것이라는 점도 탄핵 추진 사유로 들었다. 하지만 아직 국회의 임명 동의 의결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임명 거부를 이유로 탄핵하는 건 무리수라는 지적이 나왔다. 김현 민주당 의원은 이날 MBC 라디오에 나와 “우원식 국회의장이 26일 한 권한대행의 태도를 보고 진행하는 것이 절차적 하자가 없는 것 아니냐고 얘기해 발의를 미룬 것으로 확인했다”고 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재명 대표가 사법리스크에 쫓기고 있어서 민주당이 더 조급하게 탄핵안을 남발한다”며 “정부를 와해시켜 대선 국면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이 내란을 탄핵 사유로 들면서 특검법 공포를 안 했다고 탄핵을 추진하는 건 앞뒤가 안 맞는다”는 이야기도 정치권에서 나온다. 특검법을 공포하지 않고 내란 상설특검 후보 추천 의뢰를 하지 않은 건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의 행위다. 그런데 이는 탄핵 명분으로는 약할 뿐 아니라 의결 정족수 논란에 휩싸일 수 있어 무리수를 두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정부 “국제사회 신뢰 무너질 것”김 수석부대표는 “내란 진압이 국정 안정보다 우선”이라며 “내란 진압을 위해 국정 안정을 보류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같은 민주당의 ‘탄핵 폭주’에 경제·산업계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내란 진압’을 이유로 윤 대통령, 한 권한대행을 탄핵하는 마당에 추가 탄핵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 권한대행까지 탄핵되면 그다음은 경제 사령탑인 최상목 부총리도 직무가 정지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극단의 상황까지 갈 수 있다는 우려가 금융시장에 반영될 것”이라고 했다.
총리실 고위 관계자는 민주당의 한 권한대행 탄핵 추진에 대해 “대단히 유감”이라며 “국제사회의 신뢰가 무너질 우려가 있고 이는 결국 대외 신인도 악화로 나타나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참 우려스럽다”고 했다.
한재영/배성수 기자 bae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