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오후 8시 서울 연세대 대운동장에서는 여학생 4명이 발목 돌리기와 제자리 뛰기를 하며 5㎞ 달리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대학원생 최모 씨(25)는 점퍼 안에 핫팩을 붙이고 비니를 꺼내 썼고, 친구 윤모 씨(25)는 기모 안감이 달린 방한용 마스크를 착용했다. 최씨는 “책상에 앉아만 있으니 살이 찌고 멍해지는 것 같아 얼마 전 러닝을 시작했다”며 “추위를 뚫고 뛰면 더 상쾌해지는 게 겨울 러닝의 매력”이라고 했다.
체감온도 영하 15도의 맹추위에도 러닝의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 서울 한강과 서울숲 등에선 봄가을처럼 러닝크루(소모임) 모임이 활발히 열리고, 마라톤대회도 성황리에 치러지고 있다. 극한체험을 기꺼워하고 자기관리에 관심이 많은 20·30세대가 동장군과 함께하는 ‘겨울 러닝’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추위 뚫고 달리는 러닝크루 활발커뮤니티 플랫폼 ‘소모임’에 따르면 24일 서울에서 일정을 잡은 러닝크루는 35개에 달했다. 서울숲, 잠실 석촌호수, 보라매공원, 양재천변 등 서울 전역의 다양한 장소에서 모임이 열렸다.
러닝의 장점은 정신적·육체적 건강을 챙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한겨울에 뛰면 상쾌함이 배가된다는 게 러너들의 설명이다. 넥워머, 방한용 장갑과 페이스마스크, 비니 등으로 무장하면 추위를 이길 수 있고 전열 장갑과 발가락 핫팩, 발열 벨트 등 몸을 따뜻하게 지켜줄 기능성 ‘핫템’을 착용하는 이도 많다.
매주 한 번 도림천변 5㎞를 뛴다는 직장인 류모 씨(28)는 겨울 러닝의 매력에 대해 “겨울엔 운동량이 부족해 우울해지곤 했는데, 뛰고 난 뒤로는 완전히 사라졌다”며 “눈이 흩날릴 때 자신의 호흡과 걸음에 완전히 빠지는 ‘설중런(雪中run)’의 운치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했다.
봄가을에만 마라톤대회가 열리는 건 옛말이 된 지 오래다. 대한생활체육회는 최고기온이 영상 2도에 불과하던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21회 한강시민마라톤대회를 성황리에 치렀다. 주최 측 관계자는 “2022년 행사엔 2000명이 참여했는데 러닝 인기가 높아진 작년과 올해엔 세 배가 넘는 사람이 몰렸다”고 했다.
‘칼바람 러닝’의 식을 줄 모르는 인기에 겨울 마라톤대회도 늘고 있다. 마라톤 정보 플랫폼인 마라톤 온라인에 따르면 지난 1월에는 전국적으로 7개 마라톤대회가 열렸는데 이달에는 15개, 내년 1월엔 12개 대회가 개최됐거나 예정돼 있다. ‘초보 겨울 러너’들…안전사고 우려도↑러닝의 인기는 최근 2년여간 치솟았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5202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아웃도어 활동·실내외 운동 15종 경험률’ 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조깅, 마라톤 등을 했다는 사람의 비율은 32%로 2021년 23%에서 9%포인트 상승했다.
최근 ‘런린이’(러닝 초보자)들이 무작정 대회에 참가하는 바람에 안전사고 위험이 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근육과 관절이 굳는 한겨울에는 발목 염좌 등의 부상이 잦아지고, 몸이 한번에 식을 수 있어 저체온증 위험도 커진다고 지적했다. 안경준 스포츠안전재단 전문위원은 “러닝으로 뜨거워진 몸이 영하의 날씨에 노출되면 저체온증이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며 “대회에 참가할 땐 방한 장갑 등 개인용품을 잘 갖추고, 무엇보다 개인 체력에 맞게 강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한성과 통기성을 갖춘 장비도 부상 방지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땀에 젖은 채 뛰면 체온이 더 빠르게 내려가는 만큼 땀을 빠르게 배출·건조할 수 있는 쿨맥스 소재 옷과 습기 배출에 뛰어난 고어텍스 러닝화 등을 착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마라톤업계 관계자는 “체온 손실을 막는 방한성 바람막이와 넥워머, 귀마개 등의 보온템이 저체온증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정희원/김다빈 기자 to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