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사례가 끊이지 않는 자동차산업 재편 역사에서 현대자동차의 기아 인수는 몇 안 되는 성공 사례 중 하나다.”
세계 자동차 랭킹 7위 혼다와 8위 닛산이 합병 추진을 공식화하면서 세계 자동차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닛산이 최대주주로 있는 일본 4위 미쓰비시자동차도 합병 대상인 만큼 성사되면 도요타를 뺀 일본 2~4위가 한 식구가 되는 셈이다.
100년이 넘는 자동차산업 역사에서 글로벌 기업 간 ‘합종연횡’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성공 사례는 많지 않다. ‘세기의 결혼’으로 불린 미국 크라이슬러와 독일 다임러의 합병이 그랬다. 두 회사는 기업 문화 차이로 별다른 시너지를 내지 못했고, 결국 2007년 헤어졌다. 닛산도 1999년부터 제휴 관계를 맺은 르노와 결별 수순을 밟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4일 혼다와 닛산 간 합병 역시 큰 고통이 따를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1999년 현대차의 기아 인수 사례를 배워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 매체는 “현대차는 아시아 외환위기 때 기아를 인수한 뒤 각자 브랜드를 유지하며 판매에선 경쟁하되 연구개발에선 힘을 모으는 식으로 실력을 키웠다”고 했다.
하지만 니혼게이자이신문의 극찬에도 정작 현대차그룹은 웃을 수 없는 상황이다. 비야디(BYD) 등 중국 전기차의 공습을 막아내기도 힘겨운 가운데 제2의 현대차·기아를 꿈꾸는 ‘혼다+닛산+미쓰비시’란 새로운 강적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 3사가 하나가 되면 판매대수(지난해 813만 대) 측면에서 현대차·기아(730만 대)를 넘어 글로벌 3위로 올라선다. ‘규모의 경제’가 생기면 생산 효율이 높아질 뿐 아니라 각종 부품 구입비도 줄일 수 있게 된다.
제품 포트폴리오도 좋아진다. 하이브리드 강자인 혼다와 전기차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닛산의 만남이어서다. 현대차와 기아가 그랬듯이 두 회사도 합병 이후 판매에선 경쟁하되 연구개발은 함께하는 식으로 운영할 가능성이 크다. 안 그래도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분야의 실력자들이 두툼해진 주머니로 미래차 개발에 나서면 현대차그룹엔 상당한 위협이 될 터다. 일본 기업엔 사실상 ‘파업 리스크’가 없다는 점, 일본 정부가 막후에서 이번 합병을 지원하고 있다는 점도 현대차그룹엔 부담이다. 합병이 예정대로 진행되고, 궁합도 잘 맞으면 ‘혼다+닛산+미쓰비시’가 현대차그룹이 세계 곳곳에 쌓아놓은 둑을 터뜨릴 게 뻔하기 때문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얼마 전 싱가포르에서 연 임직원들과의 타운홀 미팅에서 “진정한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했다. 중국과 일본의 협공에도 불구하고 현대차그룹이 그 순간을 맞이할 수 있도록 노사 모두가 도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