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여성가족재단을 맡으며 자신에게 던진 가장 큰 숙제이자 질문은 ‘나는 왜 여성을 대변하려고 하는가’라는 것이었다. 그동안 안타깝게만 바라본 극단적인 젠더 갈등이 우리 사회와 가족제도를 파괴할 것만 같은 상황에서 나온 의무감 같은 것이었다. 사실 여성계와 인연을 맺은 것은 25년 전부터다. 밀레니엄을 앞두고 여성계가 하나 되어 한국 여성의 작품 정보를 모으는 한국여성저작정보센터 건립 운동에 기획자 역할을 맡았다. 한창 잘나가던 방송을 접고 서울여대 겸임교수를 맡으며 여성계 업무에 뛰어들었다. 돌이켜보면 ‘미투’ 사례로 거론될 법한 여성 폄하나 성희롱이 비일비재했던 남성 중심의 방송국 문화에서 벗어나 20대 혈기로 여권운동을 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당시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명예위원장을 맡고 문인이자 초대 정무장관을 지낸 조경희 박사, 김영정 전 정무장관, <토지>의 박경리 작가를 비롯해 김후란, 전숙희, 김남조 시인 등 기라성 같은 분들을 조직위원회에 모시고 ‘100년 가는’ 아카이브를 만들고자 여기저기 뛰어다녔는데 꿈처럼 실현됐다.
가만히 되돌아보면 나를 만든 모든 환경이 ‘여성이라서’와 ‘여성과 함께’, ‘여성이니까’로 귀결된다. 1남6녀 가정에서 3대 독자 남동생을 둔 다섯째 딸이라는 태생부터 만만치가 않다. 가부장적 집안에서 딸들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가감 없이 설명하고 대변할 수 있다. 여중, 여고, 여대를 나왔으니 여성들과 함께, 여성을 위해 일하는 건 너무나 익숙하다.
그러나 아픔도 많았다. 여권 신장을 위한 토론회에서 “여성들도 직장생활을 할 때 남성과 똑같이 치열하게 임해야 한다”고 말하자 “박정숙 씨는 남성이 만들어놓은 여성상을 그대로 구현한 덕에 성공적인 삶을 살면서 그런 말을 하냐”라는 가시가 돋친 공박이 돌아왔다. 그 말을 듣고선 여성계를 떠났다. 드라마 ‘대장금’에 중전마마로 출연해 한창 인기를 얻던 시절 스토킹으로 삶이 망가질 지경이었는데도 경찰조차 ‘인기 탓’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 모습을 떠올리면서 우리 재단에서 하는 스토킹 범죄 예방 사업의 귀중함도 다시 생각해 본다. 빌 게이츠가 설립한 글로벌 국제기구에서 10년이 넘게 일했음에도 국내 국제기구를 이끄는 자리에 임명되니 ‘보은인사 대상자’라고 헐뜯는 말이 돌았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처럼 우연인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가해자가 여성이었던 점도 아이러니하다. 그래서 아마 더 여성을 대변하고 싶어진 것 같다. 잘못된 젠더 관념이 남녀를 가르고, 20대 남녀가 정치적으로 이용돼 증오의 도구가 되어버린 현실을 보면서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게 된다. 새해에는 상식이 통하는 조화롭고 평등한 세상이 오기를 다시 한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