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2월 23일 20:04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의 공세에 맞서기 위해 집중투표제 카드를 꺼냈다. 의결권을 특정 이사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는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MBK 연합이 의결권 기준으로 과반에 가까운 지분을 보유하고도 이사회 과반을 장악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도입한 제도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악용되는 사례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고려아연은 다음달 23일로 예정된 임시 주총에서 논의할 안건을 확정해 23일 공시했다. 눈에 띄는 안건은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의 건이다. 이는 고려아연의 주주인 유미개발이 제안한 안건이다. 고려아연 지분 1.63%를 보유한 유미개발은 최 회장 일가의 가족회사다. 주주제안 형식을 빌렸지만 사실상 최 회장 측이 제안한 안건에 가깝다.
집중투표제는 이사를 선임할 때 주식 1주당 선임하고자 하는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10명의 이사를 선임할 땐 주식 1주당 10개의 의결권이 부여된다. 이 의결권을 특정 이사 후보 1명에게 몰아줄 수 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MBK 연합이 우호세력 지분을 더해 의결권 기준 과반 지분을 확보하더라도 이사회 과반을 장악하지 못할 수도 있다. 최 회장 측이 전략적으로 의결권을 특정 이사에게 몰아주는 방식으로 이를 방해할 수 있어서다.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해 정관을 변경하는 건 주총 특별결의 사안으로 주주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다만 이 안건은 '3%룰'이 적용된다. 3%룰은 3%보다 지분을 많이 가진 주주들의 의결권도 최대 3%로 제한하는 제도다. MBK 연합이 지분 40.97%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3%룰이 적용되면 의결권이 제한되기 때문에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 안건이 통과될 가능성이 있다.
MBK 연합 측은 최 회장이 자신의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소액주주 보호를 위한 제도인 집중투표제를 악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고려아연은 소액주주 의결권 강화 및 보호를 위해 주주제안으로 들어온 집중투표제 안건을 의안으로 상정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이번 임시 주총에서 집중투표제를 도입한 뒤 곧장 이를 활용해 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예상된다. MBK 연합 측은 설령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더라도 이 제도를 활용한 이사 선임은 다음 주총 때부터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고려아연은 이사 수의 상한을 최대 19명으로 제한하도록 정관을 변경하는 안건을 의안으로 올렸다. MBK 연합이 신규 이사 14명을 선임해 이사회를 장악하는 걸 막기 위한 안건이다.
고려아연 이사회는 현재 13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장형진 영풍 고문을 제외한 나머지 12명은 최 회장 측 인사다. 고려아연 정관에서 최소 3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해야 한다는 규정만 두고 있다. 만약 임시 주총에서 정관을 변경하는 안건이 통과돼 이사 수 상한이 생긴다면 MBK 연합이 이사회를 장악하긴 어려워진다.
고려아연은 신규 사외이사 후보도 공개했다. 이상훈 전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 한국대표가 고려아연 측 이사 후보로 이름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이 전 대표는 사모펀드(PEF)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로 어피니티의 전성기를 이끌다 지난해 회사를 떠났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