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18개 대회에 출전해 두 번의 준우승을 비롯해 7번의 톱10, 상금랭킹 13위(총상금 177만4824달러). 꽤 준수한 성적이지만 “아쉽다”는 평가가 따랐다. 그 주인공이 다름 아닌 고진영(29)인 탓이다.
그럴 만도 하다. 올해까지 LPGA투어에서 7년을 뛰며 통산 15승, 163주 동안 세계랭킹 1위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선수가 고진영이다. 처음으로 우승 없는 시즌을 마무리한 고진영은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샷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아 시즌 중반부터 ‘안식년’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래도 골프를 더 잘하고 싶다는 열정이 남아있음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더 신나게 즐길 준비가 됐다”고 활짝 웃었다. 2018년 “압도적으로 강해지자” 각성2014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 데뷔한 뒤 고진영은 한 번도 주춤한 적이 없었다. 2017년까지 통산 9승을 거두고 이듬해 미국으로 건너가 공식 데뷔 무대(ISPS한다호주여자오픈) 우승을 시작으로 신인왕까지 거머쥐었다. 고진영은 “미국 진출 첫해인 2018년 겨울이 터닝포인트였다”고 꼽았다. “미국에 가니 저는 아시아에서 온 무명선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나를 알리기 위해서는 압도적으로 잘해야 한다’는 오기가 생겼죠.”
시즌 최종전인 CME그룹투어챔피언십이 끝난 뒤 대부분의 선수가 대회장을 떠났지만 고진영은 그곳에 남았다. 그리고 퍼트, 쇼트게임 코치를 구해 3주 동안 집중 훈련에 들어갔다. 퍼트 어드레스부터 쇼트게임 테크닉까지 모든 것을 뜯어고친 뒤 곧바로 전지훈련길에 올랐다.
그리고 고진영은 ‘그럭저럭 잘하는 선수’에서 ‘압도적인 강자’로 변신했다. 메이저대회 ANA인스피레이션 우승을 거머쥐면서 처음으로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 그리고 세계랭킹 1위 최장 기록(163주)까지 내달렸다. 고진영은 “저에게는 우승이 곧 도파민”이라며 “우승의 짜릿함 덕에 지치지 않고 달렸다”고 말했다.
올해 준수한 성적에도 아쉬움이 남는 것 역시 우승이 없어서다. 그럼에도 “얻은 것도 적지 않다”고 자평했다. 가장 큰 성과는 퍼트다. 고진영은 “사실 퍼트가 늘 중위권에 머물렀다”며 “올해 그린 적중 시 평균 퍼트 2위(1.76개), 라운드당 퍼트 5위(28.05개)로 미국 진출 이후 처음으로 퍼트 톱10에 들었다”고 말했다.
위기 상황의 파세이브 능력도 올 시즌 성과 중 하나다. 고진영은 지난 6월 메이저대회인 KPMG여자PGA챔피언십을 “가장 괴로우면서도 가장 크게 성장한 대회”라고 돌아봤다. “코스가 어려워서 어떻게든 파를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에 악착같이 쇼트게임에 집중했고, 준우승을 했죠. 10년간 출전한 대회 중 쇼트게임으로는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웃음) “매해 성장하는 선수이자 사람 되고파”우승 사냥이 멈추긴 했지만 고진영은 리디아 고(뉴질랜드)에 이어 LPGA ‘명예의 전당’에 입회할 가능성이 가장 큰 선수 중 한 명이다. 입회까지 남은 포인트는 7점. 고진영은 “한때 명예의 전당을 목표로 저 자신을 채찍질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고 털어놨다. “어느 순간 그 목표에 사로잡혀 ‘입회에 실패하면 내 골프인생 전체가 실패’라는 생각을 하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지 않아도 제가 성취한 것들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내년이면 고진영은 서른을 맞는다. 그는 “아무것도 안 하고 나이만 먹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매해 선수이자 한 사람으로서 성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우승에 대한 욕심, 더 나은 골프에 대한 욕심이 있을 때까지만 뛰고 싶어요. 그래도 ‘세계랭킹 200주 1위’는 조금 욕심이 나긴 해요.”(웃음)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