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기업은 개발과 양산 과정에서 전기신호 테스트를 통해 제품 불량 여부를 확인한다. 이때 쓰이는 부품이 반도체 테스트 소켓(사진)이다. 반도체 후공정 단계 부품 중 하나인 테스트 소켓 분야에서 한국 강소기업 아이에스시(ISC)가 세계 시장을 이끌고 있다. 고무 소재인 실리콘 러버 소켓 생산이 주력인 ISC는 세계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김정렬 ISC 대표는 지난 20일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위한 테스트 소켓은 고객사의 기대를 충족하기 어려웠다”며 “내년 1~2분기에는 양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HBM 테스트 소켓 양산이 SK하이닉스 등 국내 대기업이 생산하는 HBM 제품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HBM 후공정 패권 선점세계 인공지능(AI)용 데이터 센터에는 미국 엔비디아 AI 가속기(AI 모델의 연산을 빠르게 하는 반도체)가 90% 이상 들어간다. HBM은 AI 가속기의 필수품이다. 하지만 HBM을 위한 테스트 소켓은 시중에 나와 있지 않다. 현재 HBM을 테스트하려면 소켓 대신 프로브카드를 써야 한다. 프로브카드는 전공정이 완료된 반도체 웨이퍼의 기능을 테스트하는 부품이다. 하지만 소켓 테스트는 패키징 이후 제품을 실제 사용 환경과 비슷한 조건에서 이뤄진다.
소켓 테스트가 가능해지면 패키징 후 결함 검출 능력이 강화돼 HBM 양산 단계에서 비용이 줄어드는 등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그동안 걸러내지 못하던 HBM 오류를 ISC의 소켓이 잡아낼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ISC는 2004년 세계 최초로 실리콘 러버 소켓을 양산했다. 선발주자답게 전공정을 100% 내재화했을 뿐 아니라 핵심 소재의 원천기술 특허도 보유하고 있다. 방열이 강한 것도 경쟁력이다.
김 대표는 “칩에서 열이 많이 나오면 제대로 동작을 안 하는데 자체적인 방열 솔루션을 갖춘 덕분에 고객사 수율 안정화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은 대부분 ISC 소켓을 쓰고 있다. 美 현지에 R&D 지원센터 설립ISC의 생산 거점은 베트남이다. 주 52시간 규제에 묶인 국내와 달리 베트남에서는 2교대와 추가 근무가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김 대표는 “납기가 짧은 산업 특성상 양산 대응 능력이 중요하다”며 “2026년까지 베트남 공장 공정자동화와 증설 등에 500억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에는 미국 애리조나주 챈들러시에 연구개발(R&D) 지원센터를 세웠다. 챈들러시는 인텔이 첨단 반도체 공장을 건설 중인 곳으로 삼성전자, TSMC 공장과도 가깝다. 김 대표는 “애리조나 지원센터에 대해 고객사들의 반응이 상당히 좋다”며 “내년에는 텍사스, 미시간, 싱가포르 등으로 넓혀 고객사와의 실시간 소통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ISC는 지난해 10월 SK그룹 중간지주사인 SKC에 인수됐다. ISC는 반도체 소재와 부품, 검사 장비를 생산하는 SK엔펄스와 유리기판을 개발하는 앱솔릭스 등 SKC 자회사와의 협업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엔 코스닥시장 상장사 중 최초로 밸류업 계획을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현재 2000억원 안팎 수준인 연매출을 2027년까지 5000억원으로 확대한다는 구상이 핵심이다.
김 대표는 “AI 반도체 시장이 확대되자 관련 소켓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며 “소켓 부문 생산 능력을 두 배 늘리고, 테스트 장비 기업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반도체 후공정 종합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올해 3분기 기준 누적 매출은 1352억원, 영업이익은 373억원이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7%, 350% 늘었다.
성남=최형창 기자 ca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