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핵 대결, 저성장…새해 곳곳 '암초'

입력 2024-12-23 10:01
수정 2024-12-23 15:45

이맘때면 한 해를 결산하고 내년은 어떤 모습일지 전망해보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느닷없는 대통령의 계엄 선포, 국회의 계엄 해제와 대통령 탄핵 소추 결의로 전 국민적 관심이 온통 국내 정치문제에 쏠려 있어요. 만약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 탄핵이 인용된다면 내년에 다시 대선을 치러야 하는 사정도 있지요. 정치권은 물론, 국민 여론이 격랑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그 사이 세계는 급변하고 있습니다. 120년 전 을사늑약이 체결되던 때처럼 자기 나라 이익만 앞세우는 약육강식의 전쟁터가 되고 있는 듯합니다.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미국의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다음 달 초면 들어서는데,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고 국무총리가 이를 대행하면서 통상·안보 등 분야에서 우리의 이익을 지켜나갈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민간 기업은 본격화하는 글로벌 저성장을 돌파하고 고부가가치 산업에서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노력 중이지만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한 상황 판단이 중요합니다. 내년 세계 정치와 경제의 움직임과 방향, 새로운 기회의 요인, 대비하고 피해야 할 위험 요소 등을 조목조목 따져봐야 합니다. 이는 일반 국민의 경제생활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죠. 조금 더 미시적으로 들어가 내년 산업과 소비 트렌드는 무엇이 주도할지, 어떤 사회적 현상과 키워드가 관심을 모을지도 관심입니다. 이런 내용들을 4·5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막내리는 군축…불확실성 최고조로
스스로 행동, 목표 이루는 AI 나오나 경제에 대한 전망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어렵습니다. 관련 변수가 워낙 많은 데다 경제주체의 심리적 요인에 많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미래를 자신 있게 예측하는 경제학자일수록 바보이거나 거짓말쟁이에 가깝다”는 말도 있을 정도입니다.

틀려도 꼭 필요한 경제전망

새해를 앞두고 하는 경제전망이 맞은 적도 별로 없어요.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10월 ‘세계경제전망’을 발표하며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2.9%로 예상했습니다. 작년보다 성장률이 0.1%포인트 낮아질 걸로 봤죠. 그런데 올해 1.5% 성장할 것이라던 미국 경제가 실제론 2.8%대까지 호황을 누리면서 세계 성장률도 3.2%대로 올라섰어요. 경제는 한 분기면 몰라도, 1년 이상 내다보는 것은 정확성을 담보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IMF도 세계경제전망을 1년에 네 차례 발표합니다. 이런 취약점에도 경제 전망에 대한 관심은 변함없이 큽니다. 발생 가능한 여러 시나리오에 대비하게 해주고 위험 요소를 사전에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성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혼돈의 시대

한편 정치·군사 분야의 새해 전망은 그 흐름이 이어져오는 특성 때문에 예측 가능성이 높습니다. 매년 연말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새해를 예측한 책을 발간하는데요, 올해를 조망할 때는 ‘취약성의 창’이란 주제어를 앞세웠습니다. 세계 주요국에서 선거가 잇따라 치러지는 ‘슈퍼 선거의 해’를 맞아 정치적 불안정성이 고조될 거란 얘기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정점의 이벤트인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면서 취약성의 창이 활짝 열렸습니다.

이코노미스트는 <2025 세계대전망(The World Ahead 2025)>(이하 <세계대전망>)에서 대혼돈을 맞이할 국제사회에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트럼프의 압도적 승리라는 미국민의 선택은 ‘미국 우선주의’를 중심으로 세계 곳곳에서 갈등을 만들고, 심지어 핵확산 위험을 키울 수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핵탄두 보유량을 억제하는 신전략무기감축조약(뉴스타트)은 2026년 2월로 만료됩니다. 또 ‘슈퍼 선거의 해’를 통해 주요국의 집권당은 퇴출되거나, 연립정부 구성 또는 권력 분점에 나서야 했습니다. 변화를 요구한 세계의 유권자들로 인해 국제정치가 어떻게 바뀌어나갈지 관심입니다. 멀리 볼 것도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 탄핵 심판, 이후 대선 가능성이 열려 있고, 우리 이마 위에선 중국과 러시아·북한의 결착에 한반도 안보 위기도 점증하고 있습니다.

인도 경제, 어디까지 질주할까

이번엔 경제 이슈를 볼까요? <세계대전망>은 미·중 무역전쟁이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무섭고도 끈질긴’ 무역전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이러면 글로벌 저성장을 피해 가기 어렵습니다. IMF의 내년 세계 성장률 전망치는 3.2%인데, 이게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세계대전망>은 또 세계 각국이 물가와의 전쟁을 마무리하면서 2010년대식 ‘저금리 시대의 귀환’을 목격할 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높은 관세는 인플레이션을 다시 점화시킬 위험도 있어요. 한편 각국 정부는 그동안 많이 풀린 돈 때문에 불어난 재정적자를 줄여야 하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전쟁에 대비해 군비는 증강시켜야 하는데 나라 곳간은 부실한 곳이 적지 않습니다. 이런 가운데 ‘질주하는 코끼리’ 인도가 내년에 일본을 뛰어넘어 아시아의 두 번째 경제대국이자 세계 4위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내다봤습니다.

마지막으로 인공지능(AI)을 빼놓을 수 없죠. 인류 역사를 바꿀 수 있는 AI는 산업 트렌드로 묶기엔 너무 큰 주제입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작년 이맘때 ‘현실로 다가온 AI’를 강조했어요. 그런데 내년은 ‘본격 시험대 오르는 AI’에 주목하라고 합니다. 실제로 세계 비즈니스 역사상 가장 큰 ‘도박’이 AI 산업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올해부터 3년간 세계 AI 데이터센터에는 총 1조4000억 달러(약 1980조원)의 투자가 집행될 예정입니다. 막대한 AI 투자가 본격적인 성과로 이어질지, AI가 자율적으로 행동하며 목표를 달성해나가는 ‘에이전틱(agentic) AI’로 발전해갈지 가늠해보는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NIE 포인트1. 경제전망이 정확도가 떨어지는 이유를 분석적으로 이해해보자.

2. 안보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나라 국방예산은 충분한지 어떠한지 알아보자.

3. ‘인도의 시대’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디펜스테크, 양자과학, K컬처 초관심
"진정한 나를 찾는다" 잘파세대 눈길
이번엔 산업과 소비트렌드 쪽으로 시야를 돌려볼까요? 이코노미스트의 <세계대전망>은 내년 산업계를 이끌 새 흐름으로 디펜스 테크(Defence Tech)를 꼽습니다. 이는 인공지능(AI), 무인비행체 드론 등을 이용하는 방위산업 기술인데요, 저비용·고효율 무기를 개발하는 것을 말합니다. 유럽에선 지난 3년간 매년 300개의 방산 관련 스타트업에 20억 유로(약 3조210억원) 이상의 벤처투자가 집행됐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소개합니다.

흔들리는 솅겐 시스템

내년엔 중국 주도의 청정기술(clean-tech) 붐이 더욱 강력해질 전망입니다. 중국 전기차 가운데는 바퀴를 각각 다른 방향으로 돌려 탱크처럼 제자리에서 360도 회전할 수 있고, 비상시 물에 떠서 주행할 수 있는 플로팅 모드를 갖춘 제품도 있죠. 샤오미의 새 전기차는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슈퍼 카와 비슷한 2.8초에 불과하고, 운전자 집에 있는 샤오미 디바이스로 원격 제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유엔은 양자역학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내년을 ‘양자과학(Quantum Science)과 기술의 해’로 지정해 양자과학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높아질 전망입니다. 양자과학에 기반한 양자컴퓨팅은 현존하는 최고 기능의 슈퍼 컴퓨터가 수백 년 걸려도 풀기 힘든 문제를 단 몇 초 안에 풀어낼 수 있는 연산속도를 지원합니다.

올해는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까지 이어지며 K-컬처가 최전성기를 구가했죠. 지난 10월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소프트파워지수 평가에서도 한국은 1.68점으로 세계 1위에 올랐습니다. 소프트파워란 군사력·경제력 등 물리적 힘이 아닌, 문화와 체제가 갖는 매력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국회의 대통령 탄핵 소추 등으로 정치 불안이 이어지면서 K-컬처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덧입혀지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이코노미스트는 물품뿐 아니라 사람의 국제적 이동도 점점 벽에 부딪힐 것이란 전망을 내놨습니다. “트래블(travel)이 트러블(trouble)을 맞고 있다”고 했습니다. 유럽에도 국경 검문이 늘어나면서 국경 없는 솅겐 시스템(Schengen System, 유럽 각국이 역내 국가 간에는 통행을 제한하지 않는 시스템)이 흔들릴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미-맥싱’ ‘정속 가능 라이프’ 눈길

눈길 끄는 내년 전망은 아무래도 사회나 소비트렌드 쪽입니다. 신조어가 많이 등장하고 통찰력이 느껴지는 대목이기 때문이죠. 아래 내용은 김난도 서울대 교수와 마케팅 리서치 회사 입소스, 대학내일20대연구소,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등의 내년 트렌드 소개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먼저 ‘진정한 나의 발견’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할 전망입니다. 이른바 잘파세대(Z세대+알파세대)의 최대 관심사는 바로 ‘나 자신’이라고 합니다. 입소스의 ‘미-맥싱(Me-Maxing)‘은 외모나 경력, 잠재력 개발 등 다양한 면에서 자신을 최고로 가꿔나가는 세태를 나타내는 용어입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도 오래도록 나다운 삶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자기보존’을 주요 트렌드로 잡았습니다. 그런데 ‘나다움’이 뭔지 알려면 스스로를 꼼꼼히 살펴봐야겠죠? 그래서 이어지는 트렌드가 ‘건강한 고립·고독’입니다. SNS 등으로 과잉 연결된 현 상황을 벗어나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죠. 조용한 일상, 조용한 휴가, 조용한 퇴사 등을 추구한다고 해서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는 조용함을 욕망하는 ‘콰이어트 앤 사일런스’를 내년 키워드로 잡았습니다. 김 교수는 ‘아보하’라는 신조어를 제시했습니다. ‘아주 보통의 하루’라는 뜻인데요, 큰 행복보다 무탈한 하루에 만족하는 삶을 말합니다. 이는 미국에서 시작된 ‘내향적 경제(Introvert Economy)’ 트렌드와도 이어집니다.

다음으로 ‘긍정 추구’입니다. 입소스의 ‘정속 가능 라이프’(건강한 삶을 위해 자신만의 속도를 찾아가는 과정과 행동), ‘성공 패러독스’(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과의 결별)란 신조어는 모두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만의 가치관을 세워 긍정의 삶을 사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이돌 그룹 아이브 멤버인 장원영의 사고방식, 즉 ‘원영적 사고’와 비슷한 거죠.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NIE 포인트1. 양자과학에 대한 이해를 넓혀보자.

2. 솅겐시스템마저 흔들리면 글로벌 사회는 더욱 닫힌 사회가 될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3. 내년 소비트렌드 가운데 가장 설득력 있어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