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중견기업, 통상임금 쇼크…"2교대 사업장 인건비 30% 뛰어"

입력 2024-12-20 18:24
수정 2024-12-21 02:54
“대법원 판결 선고 이후 기업으로부터 전화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기세환 태광노무법인 대표노무사는 20일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낸 통상임금 판결의 파급력이 예상보다 훨씬 크다”며 이렇게 말했다. 기 대표는 “연장근로 비중이 큰 2교대·3교대 제조업 사업장, 기본급을 줄이기 위해 상여금 비율을 높여 놓은 사업장 등은 인건비가 30% 이상 올라갈 수 있다고 기업들에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한화생명보험 전현직 근로자가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소송에서 ‘재직자만 주는 조건’이 붙은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결하자 산업계가 혼란에 빠졌다. 노동법 전문가들은 내년부터 연장·야간·휴일근로가 많은 사업장을 중심으로 인건비 부담이 크게 늘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통상임금이 이들 수당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자동차, 금속, 중공업, 조선, 건설기계 업종 등이 대표적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현대자동차는 매년 수백억원에 달하는 인건비를 추가로 부담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현대차와 임금 체계가 비슷한 2차, 3차 협력 업체도 인건비 급증으로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대법원이 이번 판결에서 통상임금으로 인정받기 위한 세 가지 요건(정기성·일률성·고정성) 중 고정성 요건을 아예 삭제해 중소·중견기업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통상임금 범위가 대폭 넓어지기 때문이다. 한 노무사는 “식당 사업주가 ‘재직 중인 종업원에게 명절 때마다 주는 떡값, 김장비도 통상임금이냐’고 문의해 앞으로는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답해 줬다”고 말했다.

법조계는 수당을 다시 계산해 달라는 요구가 늘어나 임금 관련 분쟁이 많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한 노동 전문 변호사는 “이번 판결이 나온 뒤 노동조합 서너 곳에서 소송 상담 문의가 들어왔다”며 “노동 분야 변호사 커뮤니티에서도 소송 증가에 대비해 법리를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19일 입장문에서 “중소기업의 추가적인 비용 부담과 노사 갈등 증가, 고용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 판결은 내년 노사 간 임금·단체협약(임단협)에도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임금 인상률은 성과급과 법정 수당, 복지제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되는데, 이번 판결을 반영하려면 임금 체계부터 바꾼 뒤 인상률을 논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과반수 노조 동의 등을 받아야 하는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 변경이 필요하다. 또 다른 노무사는 “과반수 노조 동의를 받는 과정에서 기업의 교섭력이 약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인건비 부담이 급증하면 성과급 규모를 줄이고 임금 인상률을 억제해 피해를 줄이려는 움직임도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곽용희/나수지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