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대통령제는 미국의 역사가 아서 슐레진저가 1973년 쓴 같은 제목의 책에서 유래했다. 그가 전형으로 지목한 인물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하야한 리처드 닉슨이다. 그러나 존 F 케네디 대통령특보를 맡을 정도로 민주당 계열인 슐레진저는 민주당 대통령들에게는 관대했다. 슐레진저의 당파성 탓에 ‘제왕적 대통령’은 상대편 대통령을 공격하는 정쟁 수단으로 쓰였다.
우리도 장기 집권한 이승만과 박정희 등에 이 딱지를 붙였다. 독재에 대한 트라우마로 대통령 임기를 5년 단임제로 바꾼 87체제 이후에도 이 표현은 개헌 필요성이 제기될 때마다 첫 번째 사유로 지목됐다. 대통령 권한이 막강한 것은 분명하다. 대통령이 관여하는 임명직 자리가 7000개쯤 된다고 한다. 대법원, 감사원 등 헌법기관도 포함된다. 예산권, 법안 제안·거부권 등에 더해 집권 여당의 공천권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대통령 권한을 국회와 비교하면 과연 ‘제왕적’이라는 수식어를 달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 의원들은 미국 영국 등에선 이미 사문화한 불체포특권, 세계에서 가장 관대한 면책권으로 방탄을 두른 뒤 아무 견제 없이 4년 임기를 꼬박 보장받는다. 미국 하원 임기(2년)보다 두 배 길다. 영국 오스트리아 대만 아이슬란드 등에 있는 국민소환제, 프랑스 등에 있는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도 한국엔 일절 없다.
국회는 대신 국정감사권으로 기업인을 볼모 삼아 구악질을 일삼는다. 과반 의석만 차지하면 장관, 방통위원장, 감사원장, 중앙지검장도 멋대로 탄핵할 수 있다. 그리고 만들어내는 법이라곤 파업 조장법, 양곡법 등과 같은 반시장법, 기업인을 365일 국회로 불러대고 영업기밀도 무조건 제출하도록 하는 악법들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제기한 개헌론을 보면 번지수가 잘못된 듯하다. 대통령 권력을 분산해 국회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하니 말이다. 개헌 논의의 방향성은 크게 두 가지가 아닐까 싶다. 하나는 ‘견제와 균형’을 넘어 국정 효율과 책임정치를 구현할 수 있는 방법론이다. 또 하나는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격인 국회를 개혁하는 것이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